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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Hosp Palliat Care 2013; 16(3): 155-165

Published online September 1, 2013 https://doi.org/10.14475/kjhpc.2013.16.3.155

Copyright © Journal of Hospice and Palliative Care.

Koreans' Traditional View on Death

Ivo Kwon

Department of Medical Education, Ewha Womans University School of Medicine, Seoul, Korea

Correspondence to:Ivo Kwon
Department of Medical Education, Ewha Womans University School of Medicine, 1071 Anyangcheon-ro, Yangcheon-gu, Seoul 158-710, Korea
Tel: +82-2-2650-5758, Fax: +82-2-2653-1136, E-mail: kivo@ewha.ac.kr

Received: August 21, 2013; Revised: August 24, 2013; Accepted: August 28, 2013

Koreans’ traditional view on death has been much influenced by Confucianism, Taoism, Buddhism, and shamanism since ancient times. Confucianism emphasizes the importance of the real life in this world and highly praises doing good deeds for the family and the community. It also praises people who are enlightened by education and self-discipline. Confucian scholars admit that death cannot be understood by rational thinking although it is unavoidable as a cosmic order. Taoism sees life as the same entity as death; Both are two different aspects of the same cosmos or the wholeness. However, the disciples of Taoism became much interested in a long life and well being that may be achieved by harmonizing with the cosmic order. Buddhism thinks that death and life are an “illusion”. It says that people can be enlightened by recognizing the fact that “Nothing is born and nothing is dying in this world. Everything is the product of your mind occupied with false belief.” However, secular Buddhists believe in the afterlife and metempsychosis of the soul. This belief is sometimes connected with the view of the traditional shamanism. Shamanism dichotomizes the world between “this world” and “that world”. After death, the person’s soul travels to “that world”, where it may influence life of people who reside in “this world”. And shamans who are spiritual beings living in “this world” mediate souls and living people. In conclusion, there are various views and beliefs regarding death, which are influenced by a number of religions and philosophies. They should be seriously considered when making a medical decision regarding the end of patients’ life.

Keywords: Key Words: Republic of Korea, Confucianism, Shamanism, Buddhism, Death, Attitude, Culture

한국인의 죽음관이란 한국인이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을 뜻한다.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은 곧 삶을 바라보는 시각의 이면이다. 그러므로 죽음관이란 곧 삶에 대한 태도를 의미할 것이다. 죽음은 삶의 끝이고, 삶은 죽음이 연장된 상태이다. 어떻게 보면 인간은 태어나서 계속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삶은 죽음이 연장, 혹은 유보된 상태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삶은 죽음을 내포하고 있고, 죽음은 또 다른 삶을 내포하고 있다. 한국인에게 한 개체의 죽음이란 또 다른 개체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생이 이어지는 계기가 된다. 한국의 대표적인 의례인 관혼상제(冠婚喪祭)는 어린이가 자라 성인으로서 사회의 온전한 구성원이 되는 관례(冠禮), 또 다른 생명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혼례(婚禮), 모든 이에게 궁극적으로 닥쳐오는 죽음의 의례인 상례(喪禮), 그리고 죽은 자를 기리며 산 자에게 그 죽음의 의미를 묻는 제례(祭禮)를 말한다. 이러한 예식들은 다른 종교의 예식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인들에게 개체를 전체 공동체와, 이승을 저승과 통합시키고 어떤 의미와 질서를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삶과 죽음에 대한 시각은 바로 인생의 궁극적 질문, 즉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으며 이 모든 일들은 왜 생기는가? 하는 종교적 질문과 관련이 있다. 한국인의 종교적 심성은 전통적인 샤머니즘을 바탕으로 하여 삼국시대 이후 유교와 도교, 불교의 깊은 영향을 받아 왔다. 이 고등 사상들은 서로 겹치고 상호작용을 하면서 한국인의 죽음관, 또는 생사관을 형성하여 왔다. 어느 하나가 온전한 한국인의 죽음관을 대변할 수는 없으며, 역사의 흐름에 따라 그러한 사상의 구체적인 모습들도 크게 달라져 왔다. 하지만 한국인의 죽음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들 사상이 제시하는 삶과 죽음의 모습들로 돌아가 보아야 할 것이다. 그 위에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한국인의 조상들이 실제로 삶과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서술하고 기록하였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 제시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그 간략한 모습이다. 이러한 전통 한국인의 죽음관의 이해는 연명 치료와 관련된 의료 기술이 크게 발전하고 인구의 고령화가 심화되고 있는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의료 현장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하나의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1. 자연으로서의 죽음

한국인의 죽음관을 한마디로 서술하면 죽음은 ‘자연(自然)’이다. 여기서 자연(自然)은 영어의 ‘nature’의 의미가 아니라 ‘절로 그러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영어의 ‘nature’는 인위적인 것과 대비되는 자연환경을 의미하거나 혹은 사물의 본성을 의미한다. ‘Nature’의 번역어인 ‘본성(本性)’은 원래 그것이 유래한 불교적 맥락과는 좀 다르게, 서양철학의 입장에서 보자면 창조주가 부여한 고정된 성질의 뜻이 강하다. 그러나 ‘自然’이라 함은 어떤 고정된 성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동적인 것, 변화하는 어떤 것, 사물이 그렇게 되어가게끔 될 수밖에 없는 바로 그 모습을 의미한다. 서양철학의 언어들이 특정 대상(objects)들의 의미를 고정하고, 그 형상을 기술하고, 그 ‘본성’을 서술하는 것과 달리 한국인이 사용하는 언어들은 주로 어떤 국면에 대한 묘사일 뿐이다. 즉 이 세계의 사태에 대한 정(情), 또는 정황(情況)을 각자의 합리적/감정적 판단까지 덧붙여서 “아 그러하구나!”라고 스스로에게, 또는 타인에게 전달하는 기능을 한다. 다시 말해서 죽음이 ‘자연’이라는 언명은 죽음은 모든 이에게 닥쳐오며, 인위로 어찌할 도리가 없으며, 이는 인간을 포함한 우주 만물의 궁극적 질서에 속하는 현상이라는 일종의 영탄(詠嘆)이다. 즉 인간은 자연과 분리되는 어떤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인간의 질서는 언제나 자연의 질서에 순응한다. 인간 역시 ‘절로 그러한’ 존재이며, 인간을 둘러싼 만물의 세계 역시 ‘절로 그러하기’ 때문이다. 이는 신이 세상을 창조하고, 그 세상을 관리하기 위해 인간을 별도로 창조하였다는 기독교의 인간관-우주관과는 전혀 다른 세계이다. 기독교의 인간관-우주관에서 인간의 육신을 포함한 모든 만물은 ‘물질’의 세계에 속해 있고, 그 ‘물질’은 신의 뜻에 의해 무로부터 창조되었으나 인간을 이루는 핵심인 ‘영혼’은 신에게 속한 불멸의 것이고, 이 세상에서의 행업에 따라 영원한 복을 누리든, 혹은 영원한 벌을 받든 할 것이다. 물질은 소멸하나 신 자체에서 비롯된 영혼은 소멸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식의 영혼-육신 이원론은 한국인에게는 전혀 낯선 것이다. 영혼은 시간과 무관한 고정된 ‘실체’이지만, 한국인에게 인간을 포함한 모든 만물(존재하는 것, 존재자)은 영원히 생성하고 소멸하는 흐름, 즉 천지의 운행(運行)에 의존해 있는 것이다. 조선 건국의 주역인 성리학자 정도전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과 만물이 연이어 생겨나는 것이 무궁한 까닭은 곧 천지(天地)의 조화가 끊임없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원래 태극(太極)에 동(動)과 정(靜)이 있어 음양(陰陽)이 생기고, 음양(陰陽)이 변하고 또 합하여 우주를 이루는 다섯 원소(五行)가 갖추어진다. 이에 무극태극(無極太極)의 진(眞)과 음양오행의 정(情)이 묘하게 합하여 사람과 만물이 나고 또 나는 것이다. 이미 생긴 것은 가서 돌아오지 아니하고, 생겨나지 않았던 것이 와서 잇게 되니 그 사이가 잠깐(一息)도 멈추지 않는 것이다(『東文選 第百五券』 「佛氏輪廻之辨」: 人物之生生而無窮 乃天地之化 運行而不已者也 原夫大極有動靜而陰陽生 陰陽有變合而五行具 於是 無極大極之眞 陰陽五行之精 妙合而凝 人物生生焉 其已生者往而過 未生者來而續其間不容一息之停也. 본 논문에서 인용한 『동문선』의 번역문은 한국고전번역원의 한국고전종합DB를 참고하여 일부 수정하였다.)(1).

이는 성리학자의 말이지만, 불교나 도교 역시 인간을 포함한 이 세상의 존재자를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의 차이는 근본적인 우주관에 있기 보다는 오히려 인간 사회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그리고 수행의 방식에 있다. 서양식으로 말하면 자연학(물리학)의 차이는 작지만, 윤리학(ethics)의 차이는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을 포함한 만물(人物)이 끝도 없이 생겨나는 것은 우주의 조화인 것이다. 천지(天地)는 하늘과 땅이 아닌 질서가 있는 우주 전체(cosmos)를 의미한다. 뒤집어 말하면 질서가 있기 때문에 사람과 만물이 “존재”하는 것이다. 질서가 없다면, 즉 카오스의 상태라면 사람과 만물이라는 각 존재자가 존재자끼리 구별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동(動)과 정(靜)도 마찬가지인데 움직임이 있으니 정지함이 있고, 정지함이 있으니 움직임이 가능하다. 음양(陰陽) 역시 이러한 상보적인 관련이 있다. 즉 서로의 존재는 서로에게 의존해 있는 것이다. 진(眞)은 서양철학에서의 형상과 흡사하며, 정(情)은 질료와 흡사하지만, 이 둘은 서로 완전히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생겼다 사라지는 존재자의 어떤 국면을 표현하는 말일 뿐이다. 즉 모든 존재자는 계속해서 태어나고 소멸하며 한 시도 쉬지 않는다(生生不息). 이는 우주에 대한 동적인 기술이고 사람도 그 안에 포함된다. 그렇기 때문에 정도전은 계속해서 말하기를 “천지의 변화가 비록 끊임없이 태어나고 또 태어나는데 모이면 반드시 흩어지고, 태어나면 반드시 죽음이 있다. 그 처음을 따져 모여 생기는 것을 알면 그 후에는 반드시 흩어져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東文選 第百五券』 「佛氏輪廻之辨」: 天地之化∘ 雖生生不窮∘ 然而有聚必有散∘ 有生必有死∘ 能原其始而知其聚之生∘ 則必知其後之必散而死).”고 하였다. 또한 혼(魂)에 대해서는 “형체가 이미 생기면 신(神)이 발동하여 의식을 알게 된다 하였으니 형체는 몸이며, 신은 혼이다. 불이 나무를 인연으로 하여 존재하는 것은 혼과 몸이 합하여 사는 것과 같다. 불이 꺼지면 연기는 올라가서 하늘로 올라가고, 재는 내려와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사람이 죽으면 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몸은 땅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불의 연기는 곧 사람의 혼기(魂氣)요, 불의 재는 곧 사람의 몸이다. 불기운이 없어진 후 연기나 재가 다시 합하여 불이 되지 못하는 것은 사람이 죽은 후에 혼과 몸이 다시 합하여 산 사람이 될 수 없는 것과 같다”고도 하였다(『東文選 第百五券』 「佛氏輪廻之辨」: 形旣生矣 神發知矣 形魄也 神魂也 火緣木而存 猶魂魄合而生 火滅則烟氣升而歸于天 灰燼降而歸于地 猶人死則魂氣升于天 體魄降于地 火之烟氣 卽人之魂氣火之灰燼 卽人之體魄 且火氣滅矣 烟氣灰燼 不復合而爲火)(2).

여기서 정도전은 혼(魂)의 존재를 인정하지만 이 역시 우주의 기가 특정한 모습으로 모인 것이고 혼 역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한다. 인간의 의식(神)이란 혼과 몸이 하나로 합쳐졌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여기서 성리학은 불교와 갈라지는데, 통상적인 불교 신앙에서는 뭇 생명체의 어떠한 의식, 또는 혼이 해탈에 이를 때까지는 육도삼계(六道三界)를 ‘윤회’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는 일종의 영혼불멸설과 상통하는 바가 있지만, 실제 불교의 교리에서는 훨씬 복잡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윤회설은 이승에서의 선업, 혹은 악업에 따라 내세에서 어떤 삶을 살게 되는가가 결정된다는 단순화된 세간의 믿음으로 초기부터 받아들여졌고, 불교 죽음관의 한 특징이 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다시 설명하도록 하겠다.

생명을 가진 존재로서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역시 죽음은 좋지 않고, 삶이 좋다는 생각은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고려의 학자 백운 이규보는 동국이상국집에서 “삶을 탐하고 죽음을 싫어하는 것은 만물의 상태(『東國李相國後集』 第3卷 「古律詩. 猒生唅」: 貪生忌死是物情)”라고 하였고, 순암 안정복은 “삶을 좋아하고 죽음을 싫어하는 것은 사람과 만물의 공통적인 상태(『順菴先生文集』 第1卷 「題烈女驪興李氏行錄後」: 好生惡死 人物通情)”라고 하였다. 근본적으로 삶이란 인간과 만물이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고자 하는 힘에서 비롯되며 죽음은 그 존재자가 소멸하는 것이다. 당연히 모든 존재자는 자신의 존재를 지속시키고자 하는 타성이 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떤 존재자도 존재자로서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 모든 존재자는 결국은 소멸하게 되어 있다. 특히 인간의 경우 이는 자신의 존재의 소멸에 대한 궁극적인 두려움과 함께 사후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미련이 남아 있게 되어 있다. 사실 모든 존재자가 소멸하니, 인간 역시 소멸한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은 고도의 수련을 거친 정신에게나 가능한 일이며 평범한 사람들은 역시 사후세계의 존재 가능성, 그리고 그 사후 세계에서 본인의 운명에 대한 의문을 품기 마련이다. 덧붙여 이 세상에서 사랑하던 사람들과 좋아하던 것들을 더 이상 즐길 수 없게 된다는 사실 역시 죽음을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일로 만드는 것이다.

2. 생명의 가치: 좋은 죽음(善終)과 치열한 죽음

유교에서 바라볼 때 좋은 죽음(善終)은 좋은 삶의 결과이다. 좋은 삶이란 행복한 삶이다. 좋은 삶이란 복(福)이 있는 삶, 즉 행복한 삶이다. 서경(書經)에 나오는 복은 다섯 가지 복, 즉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그리고 고종명(考終命)을 의미한다(『書經』 「洪範」: 一曰壽 二曰富 三曰康寧 四曰攸好德 五曰考終命) 수는 장수를, 부는 부유함을, 강녕은 몸의 건강을, 유호덕은 덕을 좋아하며 즐기는 것과 함께 그리 함으로써 사회에서 인정을 받는 것을, 그리고 고종명은 모든 소망을 달성한 다음 객지가 아닌 자기 집에서 편안하게 죽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서경의 오복은 일반 민중이 아닌 지배층을 위한 것으로, 일반 민중을 위한 오복은 중국 청대의 학자 적호(翟灝)의 통속편(通俗編)에 나와 있는데 부유함 대신 부귀(富貴), 그리고 고종명 대신에 여러 자녀를 두는 것(子孫衆多)로 되어 있다. 민중의 입장에서는 사인(士人)류의 지배층과 달리 덕을 추구하며 살다가 자신의 소명을 완수하고 죽는 것과 달리 자손을 많이 두는 것이 더 행복한 일로 여겨졌을 것이다. 어쨌든 요약하면 부귀와 영화를 누리며, 할 일을 다 할 만큼 건강하게 충분히 살며, 자손을 많이 두고 어느 시점에서 잘 죽는 것이 바로 좋은 죽음이며, 이 또한 인생을 요약하는 행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고종명(考終命)을 좀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고종명이란 할 일을 다 한 삶, 즉 직업적인 성공과 자녀의 교육 및 혼사를 다 마무리하고 나서 맞이하는 죽음이며 천재지변이나 사고, 전란에서 죽는 죽음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물론 전쟁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한 죽음은 순사(殉死)나 의로운 죽음으로 별도로 취급한다. 그리고 객지에서 죽는 죽음이 아니라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맞이하는 죽음을 의미한다. 논어에서는 공자의 제자 증자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증자가 병이 들어 제자들을 불러 모아서는 발을 펴 보고 손을 펴 보라고 하였다. 시경에 말하기를 전전긍긍하여 깊은 연못을 건너는 듯하고, 얇은 얼음을 밟는 듯 하였는데 이제야 모든 것을 벗어났음을 알겠다고 하였다(『論語』 「泰伯」: 曾子有疾 召門弟子曰 啓予足 啓予手. 詩云 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 而今而後 吾知免夫 小子). 이 구절은 삶을 잘 살기가 매우 어려움을 말해준다. 즉 일찍 죽지 않고, 재난을 당해 죽지 않고, 사고를 당해 큰 부상을 입지 않고, 형벌을 입어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개인적인 삶의 차원에서도 잘 사는 것이지만, 부모에 대한 효도의 시각에서 볼 때도 고대에는 쉽지 않았던 일이다. 그러므로 평생을 ‘전전긍긍’하며 조심스럽게 살다가 몸을 온전히 지키고 할 일을 다 한 다음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이 바로 증자가 보여주는 죽음의 모습이다.

유교에서는 삶을 중시하고 삶과 생명에 큰 가치를 부여하지만 이렇게 다가오는 죽음을 부정하지는 않으며 죽음 뒤의 세계나 죽음의 의미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다. 공자는 제자 계로(季路)가 귀신을 어떻게 섬기는지에 대해서 묻자 “사람을 잘 섬기지도 못하면서 어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는가? 삶도 모르는데 죽음을 어찌 알겠는가?” (『論語』 「先進」: 季路問事鬼神 子曰 未能事人 焉能事鬼 敢問死 曰未知生 焉知死) 하고 되물었으며 평소 기이한 것, 신이한 것, 힘쓰는 것 등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유교를 지탱하고 있는 합리적 사고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가 모두 죽음을 맞이한다는 사실은 변함없는 진리이지만, 죽음 그 자체가 무엇이며 또 사후에 어떻게 되는가 하는 문제는 합리적 사고의 범위를 뛰어넘는 것이고 따라서 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편이 옳은 일이다. “죽음은 무엇인가?”, “죽은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가?”는 유교의 핵심적 질문이 아니라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잘 죽을 수 있는 것인가?”가 핵심적 질문이다(3).

삶과 생명을 중시하고, 뭇 생명이 자신이 가진 모든 생의 역량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바로 유교의 핵심 이념인 인(仁)이다. 맹자에 의하면 모든 죽어가는, 혹은 죽을 운명인 존재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측은지심(惻隱之心)-이 바로 인(仁)의 근거이며, 이는 인간이라면 모두가 구비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이 선한 이유는 바로 이 측은지심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음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아기가 우물을 향해 기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면 누구나 놀라고 측은한 마음을 느끼는데 이는 그 아기의 부모를 알아서도 아니고, 동네 친구들에게서 이름을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며 아기가 우는 소리가 싫어서도 아니다(『孟子』 「公孫丑上」: 今人乍見孺子將入於井 皆有怵惕惻隱之心 非所以內交於孺子之父母也 非所以要譽於鄕黨朋友也 非惡其聲而然也).

이 측은지심은 바로 삶을 좋아하는 마음(好生之心)이라 할 수 있다. 누구나 자신이 죽을 존재임을 알고, 또 뭇 생명들도 죽어야 하는 존재임을 알기 때문에 죽음이 피할 수 없는 일이라 하더라도 가급적 생명을 사랑하고 생명 있는 것들이 제 몫을 다하게끔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이 측은지심은 사람뿐 아니라 다른 동물들에게도 향한다. 제나라의 선왕(宣王)이 맹자에게 정치에 대해서 묻자 맹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호흘(胡齕)이 이렇게 말하는 바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왕께서 당상에 계실 때에 소를 이끌고 당 아래를 지나는 사람이 있어 왕이 그것을 보시고 그 소는 어디에 쓰려 하느냐?고 묻자 그 사람이 말하기를 장차 흔종(釁鍾-종을 만들 때 소 피를 바르는 제사)에 쓰려 합니다고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나는 그 소가 떨면서 죄도 없이 죽으러 가는 모습을 차마 견디지 못하겠다. 그 사람이 말하기를 그러면 흔종제사를 하지 말까요? 라고 하자 왕은 어찌 제사를 폐하겠느냐. 양으로 바꾸어라(『孟子』 「梁惠王上」: 曰臣聞之胡齕 曰王坐於堂上 有牽牛而過堂下者 王見之 曰牛何之 對曰 將以釁鐘 王曰 舍之 吾不忍其觳觫若無罪而就死地 對曰 然則癈釁鍾與 曰 何可癈也 以羊易之).

맹자는 바로 이런 마음으로 정치를 하는 것이 왕도정치의 요체라 하였다. 즉 짐승이나 미물에 대해서도 측은한 마음을 가지고 그 삶을 보살펴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유교는 대의를 위해서는 목숨을 초개같이 버리는 모습을 높이 평가하였다. 개인의 삶을 온전한 개인의 삶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서 시작해서 미래로 이어지는 연속선상에서, 그리고 그 연속을 가능하게 하는 공동체의 시각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물론 서양에서도 국가나 사회를 위해, 이웃을 위해, 또는 신을 위해 목숨을 던지는 행위를 높이 평가해 왔다. 그러나 이 경우는 신에 의해 사후 세계에서 그만큼의 보답을 받는 것이고, 기독교에서는 부활 신앙으로 이를 보증하였지만 유교의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다. 국가나 사회의 대의를 위해 목숨을 던졌을 때 기대하는 바는 후세의 사람들이 자신의 떳떳한 행동을 알아주는 것이다. 정도전은 나주 사람 정침(鄭沉)의 전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 죽고 사는 문제는 본시 크다. 그러나 종종 죽음을 보기를 자기가 돌아갈 곳처럼 생각하는 이가 있는데, 그것은 대의와 명분을 위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선비가 의리상 꼭 죽어야 할 일을 당할 때 비록 끓는 가마가 앞에 놓여 있으며 칼과 톱이 뒤에 있다거나, 또는 화살과 돌이 위에서 쏟아지며 흰 칼날이 밑에서 몰아오더라도, 여기에 부딪치기를 사양하지 아니하고, 그 속으로 뛰어들어 피하지 아니함은 의리는 무겁고 죽음은 가볍게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과연 글을 잘하는 선비가 훗날 이것을 서술하여 기록으로 나타내면 그의 영웅다운 명성과 의로운 기운이 사람의 눈과 귀를 밝게 비칠 것이며, 사람의 마음과 뜻을 감동시킬 것이며, 그는 비록 죽었을망정 죽지 아니하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東文選』 「一百一券」: 嗟乎 死生固大矣 然人往往有視死如歸者 爲義與名也 彼自重之士 當其義之可以死也 雖湯鑊在前 刀鋸在後 矢石注於上 白刃交於下 觸之而不辭 蹈之而不避 豈非義爲重死爲輕歟 果有能言之士 述之於後 著在簡編 其英聲義烈 照耀人耳目 聳動人心志 其人雖死 有不死者存焉).

이와 같은 의열(義烈)의 태도는 우리 역사에서 언제나 흔히 볼 수 있었던 모습이며 심지어 원래 살생을 금했던 불교에서도 신라의 원광법사가 화랑에게 준 세속오계에서 “싸움에서는 물러서지 않는다(臨戰無退)”라 하여 의리와 용기를 권면했고, 그것이 이후의 호국불교 사상으로 이어지는 것은 특이하다. 이는 자연에의 순응과 불로장생을 추구하는 노장(老莊)적인 태도와 커다란 대비를 이룬다.

1. 노장의 죽음관

노장 사상은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과 장자(莊子)의 저술을 가르침을 근간으로 한다. 장자에 의하면 삶과 죽음은 그야말로 저절로 그러함, 즉 자연(自然)이다. 이 저절로 그러함을 체화한 진인(眞人)은 삶을 얻었다고 기뻐하지도, 죽음을 맞는다고 슬퍼하지도 않는다. 오직 있는 것은 무심(無心)함일 뿐이다. 그래서 장자는 이렇게 말한다. “옛 진인은 삶을 즐거워할 줄도 몰랐고, 죽음을 싫어할 줄도 몰랐다. 태어났다고 기뻐하지도, 죽는다고 꺼려하지도 않았다. 소연히 가서, 소연히 올 뿐이었다. 그 시초를 잊지 않았고, 그 끝을 일부러 구하지 않았다. 생을 받으면 기뻐하고, 죽으면 목숨을 돌려보냈다. 이를 일컬어 마음으로 도를 상하지 않고 인위로 자연을 돕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사람이 진인이다(『莊子』 「大宗師」 : 古之眞人 不知說生 不知惡死 其出不訢 其入不距 翛然而往 翛然而來而已矣 不忘其所始 不求其所終 受而喜之 忘而復之 是之謂不以心損道 不以人助天 是之謂眞人).” 이렇게 죽음을 바라본 장자는 자신의 아내가 죽었을 때 혜시(惠施)가 문상을 오자 질그릇을 두들기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혜시가 놀라 그 이유를 물으니 장자는 이렇게 답한다. “어찌 슬퍼하는 마음이 없었겠나. 그러나 본래 아무것도 없었는데 순식간에 변화하여 기(氣)가 생기고, 기가 변화하여 형체가 생기고, 형체가 변화하여 생명이 생겼고, 이제 또 변하여 죽게 되었는데 이는 춘하추동과 사시의 운행이나 마찬가지라 내가 곡을 한다면 천명과 통하지 못하는 것이라 곡을 그친 것 뿐이네(『莊子』 「至樂」 : 莊子妻既死,惠子弔之, 莊子則方箕踞鼓盆而歌∘ 惠子曰: 「與人居, 長子、 老、 身死, 不哭, 亦足一, 又鼓盆而歌, 不亦甚乎!」 莊子曰: 「不然∘ 是其始死也, 我獨何能乇氣∘ 雜手芒芴之間, 變而有氣, 氣變而有形, 形變而有生, 今又變而之死, 是相與為春秋冬夏四時行也∘ 不且偃然寢於巨室, 而我噭噭隨而哭之, 自以為不通手命, 故止也).” 이는 태어났다고 기뻐하지 않고, 죽었다고 슬퍼하지 않는 진인의 태도와 지극히 일치한다. 또 같은 지락(至樂)편에서 장자는 열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열자가 길을 가다가 백 년 된 해골을 보고는 풀줄기를 뽑아 이를 가리키며 말하기를 오직 나와 자네만이 일찍이 태어남도 없고, 일찍이 죽음도 없음을 알고 있다. 아직 죽음을 맛보지 않았으며 삶도 맛보지 않았음을 알고 있다네. 자네는 그래서 슬퍼하고 있는가? 나는 살아서 기뻐하고 있는가? (『莊子』 「至樂」 : 列子行食於道從 見百歲髑髏 攐蓬而指之曰 唯予與汝 知而未嘗死 未嘗生也 若果養乎 予果歡乎) 여기서 이미 죽은 해골과 살아있는 열자는 사실 둘로 구별되는 존재가 아니다. 살아있음이 곧 죽음이고 죽음이 곧 삶이다. 삶과 죽음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고, 역시 살았다고 기쁠 것도, 죽었다고 슬플 것도 없다.

이러한 세계관에서는 죽음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산다거나, 혹은 죽었다가 영혼이 언젠가는 부활할 것이라는 기독교의 세계관은 전혀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영원한 삶이나, 혹은 육신의 부활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장자는 다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장자가 초나라로 가는 길에 해골을 보았다. 해골은 말라비틀어졌지만 형체는 유지하고 있었다. 장자는 말채찍으로 그것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대는 목숨을 탐하고 이치를 잃어 이 꼴이 되었는가? 나라가 망할 때를 당해서 처형을 당해 이 꼴이 되었는가? 선한 일을 하지 않고 부모와 처자에게 미움을 받아 이 꼴이 되었는가? 춥고 굶주려 이 꼴이 되었는가? 이 말을 마치고 그 해골을 끌어당겨 베고 잠들었다. 밤중에 해골이 꿈에 나타나 말했다. 자네 말은 말만 그럴싸한 말재주꾼과 같다. 자네가 한 말은 모두 살아있는 자들의 근심거리지. 죽으면 그런 것이 없다네. 죽음의 기쁨을 들어보겠나? 장자가 “그렇게 하겠네.” 하고 말하자 해골이 말하기를 죽으면 위로는 임금도 없고 아래로는 신하도 없지. 사계절의 변화도 없다네. 온 우주를 시간으로 삼으니 왕의 즐거움도 이보다는 못할 걸세. 장자가 믿지 못하고 말하였다. 내가 조물주를 시켜 다시 그대의 몸을 돌려주고 뼈와 살과 피부를 만들어 부모처자와 동네 아는 사람들에게 돌려준다면 그렇게 하겠나? 해골이 매우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기를 내가 어찌 왕의 즐거움을 버리고 다시 인간세의 곤고함으로 돌아가겠는가? 하고 말하였다(『莊子』 「至樂」 : 莊子之楚, 見空躅髏, 髐然有形, 撽以馬捶因而問之, 曰夫子貪生失理, 而爲此乎 將子有亡國之事, 斧鉞之誅, 而爲此乎, 將子有不善之行, 愧遺父母妻子之醜, 而爲此乎, 將子有凍餒之患, 而爲此乎, 將子之春秋故及此乎, 於是語卒, 援髑髏, 枕而臥. 夜半, 髑髏見夢曰, 子之談者似辯士. 視子所言, 皆生人之累也, 死則无此矣. 子欲聞死之說乎. 莊子曰 然. 髑髏曰, 死, 无君於上, 无臣於下, 亦无四時之事, 從然以天地爲春秋, 雖南面王樂, 不能過也. 莊子不信曰, 吾使司命復生子形, 爲子骨肉肌膚, 反子父母妻子閭里知識, 子欲之乎 髑髏深矉蹙頞曰, 吾安能棄南面王樂, 而復爲人間之勞乎).

유교 사상에서는 죽음은 불가피한 일이지만 그래도 삶이 더 낫고, 삶을 사는 동안 이에 충실해야 한다고 믿는 반면에 노장 사상에서는 죽음과 삶 중에 더 좋을 것도, 더 나쁠 것도 없으며 오히려 이렇게 사는 것이 자연의 만물이 흘러가는 길인 도(道)를 따르는 것이라 본다. 그럴 때 삶도 태평할 것이고 죽음도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게 된다. 조선 성종 때의 학자이자 음악가인 성현(成俔)이 쓴 ‘부휴자전(浮休子傳)’은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거사 부휴자의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전한다.

거사는 말하기를, “살아서 세상에 우거한다는 것은 둥둥 뜬 것과 같고 죽어서 세상을 떠나는 것은 휴식하는 것과 같다. 높은 수레와 좋은 말을 타고 띠를 두르고 사제(沙堤)로 달리는 것은 우연히 오는 벼슬이자 나의 소유는 아니요, 정신을 거두고 숨을 거두어 형백(形魄)으로 화해서 무덤(斧屋)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바로 사람이 진(眞)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나도 또한 면할 수 없는 일이다. 안으로 족히 도를 즐기며 죽고 사는 것이 마음을 어지럽게 하지 아니하면, 둥둥 떠서 산다 해서 무슨 영광이며, 휴식하는 것처럼 죽는다 해서 무엇이 슬프겠는가. 나는 도를 배우는 것이지 외물을 사모하는 것은 아니다(『續東文選 券十七』 「浮休子傳」 : 居士曰 生而寓乎世也若浮 死而去乎世也若休 高車駿馬 襲圭組而行沙提者 軒冕之儅來寄也 非吾之所有也 收神歛息 化形魄而就斧屋 是人之反眞也 非亦何榮 休亦何傷 吾師道也 非慕外物也).”

한편 이와 같은 태도는 삶과 죽음에 대해 초탈하며 인생의 쾌락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고려 말의 학자 이혼(李混)이 쓴 “옛 것을 본받아(擬古)”라는 시는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어제는 꽃이 나무에 가득하다가/ 오늘은 가지에서 떨어지네/ 동풍은 무엇이 그리 바빠/ 꽃 피우기에 쉬지 않는가/ 꽃이 피어도 기뻐하지 말고/ 꽃이 떨어져도 슬퍼하지 말자/ 이 꽃이 이미 떨어졌지만/ 다시 필 때가 오리라/ 보아라 저 청동 거울 속에/ 붉은 얼굴이 날로 쇠하는 모습을/ 현자나 바보나 모두 먼지로 돌아가니/ 허물어진 무덤만 텅 빈 채로 총총/ 두어라 맛있는 술이나 마시련다/ 가련하고 슬퍼해야 마침내 무엇에 쓰랴(『東文選 券四』 「擬古」 : 昨日花滿樹 今日花辭枝 東風有何忙 開花無停期 花開亦莫喜 花落亦莫悲 此花雖已落 還復有開時 不見靑銅裏 朱顔日日衰 賢愚同歸盡 毀塚空纍纍 置之飮美酒 惻愴終何爲).”

2. 불로장생의 의지

원래 노장 사상은 삶과 죽음에 큰 미련을 두지 않고 자신의 존재를 모두 잊고 우주 만물과 하나가 되는 것(坐忘)을 이상적인 경지라 보았지만, 후세의 사람들은 이와 같은 경지에 도달하면 생명이 원래 가지고 태어난 원기(元氣)를 잘 보존하여 늙지 않고 장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미 도와 하나가 되면 생사의 대립을 넘어서서 몸을 잊어버리고 죽음을 느끼지 못하게 되면 이런 사람의 몸은 물과 불에도 손상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순수한 기(純氣)를 지키기 때문인데 이 순기란 만물이 발생하는 최초의 상태인 원기(元氣)라는 것이다(3). 이런 상태로 회복하기 위해서는 많은 수행을 해야 하며 이러한 수행을 하면 불로장생을 하고, 신선이 된다는 소위 ‘황로지술(黃老之術)’이 태어난 것이다(4). 이와 같은 믿음은 건강하게 장수하고 싶은 사람들의 열망에 부응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고 의술에 깊은 영향을 주었는데,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황로지술의 방법은 호흡법, 일종의 체조인 도인술(導引術)과 마사지, 다이어트와 특정한 약물의 복용, 성관계의 절제 등으로 구성되는데 고려의 학자 이인로(李仁老)는 “소동파를 본받아 일찍 일어나 머리를 빗다”는 시에서 그러한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등불이 가물거려 심지를 이어주고/ 바다는 광활하여 일출을 머금었네

묵묵히 앉아 오래 숨을 참고/ 단전을 손으로 주물러주네

세어버린 머리카락은 천 가닥으로 날리고/ 오래 묵은 빗은 초승달 모양

손을 타고 사락사락 떨어지는 것은/ 가벼운 바람이 눈발을 날리는 듯

쇠를 달구면 더욱 순수해지듯/ 백 번을 단련해도 충분하지 않구나

어찌 몸만 상쾌할 것인가/ 목숨 또한 걸림 없이 만들 것을

늙은 닭은 거름밭에서 퍼덕이고/ 지친 말은 모래에 몸을 비비니

이 또한 능히 스스로를 다스리는 길이라고/ 소동파에게 들은 바 있노라

(『東文選 券四』 [早起梳頭效東坡] : 燈殘綴玊葩 海闊涵金鴉 默坐久閉息 丹田手自摩 衰鬢千絲亂 舊梳新月斜 逐手落霏霏 輕風掃雪華 如金鍊益精 百鍊未爲多 豈唯身得快 亦使壽無涯 老鷄浴糞土 倦馬風沙 此亦能自養 聞之自東坡)

숨을 참고, 단전을 주무르고, 머리를 빗는 것은 모두 장생을 바라는 양생술(養生術)의 일종이다. 사람뿐 아니라 짐승들도 나름의 양생술을 행한다. 닭이 거름밭에서 퍼덕이고, 말이 모래에 몸을 비비는 것도 다 그러한 목적이 있어서이다. 소동파는 중국 당나라의 문인으로 당시에는 이러한 황로지술이 크게 유행하였다. 이와 같은 도가의 수련 방법은 신선술, 혹은 연단술(鍊丹術)이라는 이름으로 조선 후기까지 민간에서 행해졌으며 오늘날에도 그 명맥이 끊이지 않고 있다. 생사를 초월해야 한다는 사상이 마침내는 불로장생을 추구하는 방술이 된 것은 한편으로는 모순적으로 보이지만, 사람들의 불로장생에 대한 열망이 그만큼 크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1. 불교의 죽음관

불교는 오랜 역사를 통해 대승과 소승의 수많은 종파와 수많은 가르침들이 있어 그 생사관을 한마디로 서술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불교는 인간의 삶을 고통의 바다(苦海)로 바라본다.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生老病死) 삶을 모두 고통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고통에서 해방되어 영원히 무궁하고 평화로운 경지(涅槃)에 들어가는 것이 불교의 목적이다. 이 삶은 이승의 삶 한 번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소위 윤회전생(輪回轉生)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많은 불교도들은 사람이 물리적으로 죽는다 해도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육도삼계(六道三界)를 해탈 열반에 이르기까지 영원히 윤회한다고 믿는다. 이렇듯 삶이 끝나지 않고 계속하여 윤회를 거듭하는 것은 이생에서 지은 업(業)과 인연(因緣) 때문이다. 이 업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바로 해탈이며 사람과 뭇 생명(衆生)이 이 경지에 도달하면 깨달은 자인 부처가 된다. 부처가 되면 더 이상 삶과 죽음은 의미가 없어지고 삶과 죽음에 기인하는 모든 고통이 사라진다. 업을 사라지게 하고 깨달음을 얻는 데는 여러 가지 수행방법이 있다. 고타마 싯다르타가 처음 제시한 것은 어느 한 쪽에 집착하지 말고 중도를 지키며 바른 견해, 바른 생각,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작업, 바른 노력, 바른 기억, 바른 명상의 팔정도(八正道)를 수행하는 것이다. 그러한 수행을 통하여 이 세상의 모든 존재하는 것들이 사실은 허망한 것(空)임을 깨닫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다. 모든 존재자는 서로 서로에게 의존하여 끊임없이 생성소멸을 하기 때문에 우리가 실체(entity)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은 그 안에 포함된 나 자신(自我)을 포함하여 모두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이 허상에 집착하기 때문에 참다운 나와 우주의 실상을 보지 못하고, 수많은 원인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다. 반야경은 이렇게 말한다. “보살은 이와 같이 집착하지 않는 것을 방편으로 하여 반야바라밀을 배운다. 어떤 것이 얻을 수 없는 것인가? 나와 남과 중생의 목숨이, 그리고 아는 사람과 보는 사람이 모두 실체가 없으므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다. 모든 존재자는 본래 공해서 얻을 수가 없고 항상 청정하다. 청정하다는 것은 모든 존재가 나지도 없어지지도 않으며, 더러운 것도 깨끗한 것도 아니며, 얻는 것도 짓는 것도 없음을 말한다. 이를 모르는 것을 무명(無明)이라 한다. 중생은 이 무명과 갈애(渴愛) 때문에 망상을 가지고 분별을 하여 유와 무의 양극단에 얽매인다. 사리풋타야,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수행할 때는 집착하지 않음을 방편으로 하여 밝은 지혜를 얻는다. 모든 존재자는 본성, 즉 자성(自性)이 없기 때문이다(5).”

그러나 이러한 존재의 본성을 꿰뚫어볼 능력이 없는 일반 중생들은 삶과 죽음의 괴로움에 시달린다. 삶을 기뻐하고 죽음을 슬퍼하는 것은 살면서 만드는 인연들과 그 무엇들이 있다고 생각해서 집착하는 망집과 애정을 갈구하는 갈애 때문이다. 그러나 생성된 모든 존재자는 필멸하기 마련임을 깨닫고 그러한 현상계를 넘어서서 생성도 필멸도 없는 청정무구의 참된 세상을 보라는 것이다.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가 된 고타마 싯다르타는 유복자가 죽어 슬퍼하는 한 부인에게 죽은 사람이 없는 집을 일곱 군데 찾아 쌀을 한 움큼씩 얻어오면 슬픔을 이길 방법을 알려 주겠다 했고, 그 부인은 그 말을 따랐으나 그런 집은 어디에도 없음을 알았으며 죽음은 필연임을 깨달아 슬픔에서 벗어났다고 한다(5).

죽음이란 사실은 허상(空)이라는 불교의 가르침은 인류가 깨달은 가장 심오한 가르침 중의 하나에 들어간다. 그러나 삼국시대에 한반도에 불교가 전래된 후 불교는 고려시대까지 국교로서 가장 중요한 종교였으며, 그 결과 민중들의 삶에 파고들어가면서 전래의 토속 신앙 및 샤마니즘과 결합하여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었다. 소수의 엘리트에게는 깨달음의 가르침이었지만, 다수 민중에게는 부처와 보살 숭배 및 기복의 대상이 되었으며, 통치자들에게는 지배의 수단이었다. 그런 가운데 세상에서 선을 행하면 극락에 가고, 악을 행하면 지옥에 가거나 짐승이나 아수라의 형태를 띠고 다시 태어나 고통을 겪는다는 통속화된 불교의 가르침은 애초의 불교 정신과는 무관하게 한국인들의 사후 세계에 대한 관점에 깊은 영향을 주게 되었다.

2. 샤머니즘과 한국인의 사후세계

유교(죽음은 필연적이니 삶을 잘 사는 데 더 집중하자), 노장(삶과 죽음은 저절로 그러한 것이며, 그 둘은 사실상 마찬가지다). 불교(삶도 허상이고 죽음도 허상이다)와 함께 샤머니즘은 고대로부터 한국인의 심성을 깊게 지배해왔다. 샤머니즘은 기본적으로 살아있는 사람들의 이승과, 영적 존재들이 사는 저승을 구분하고 이 두 세계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고 생각한다. 현세 이승에서 사는 사람들의 길흉화복이 저승의 영적 존재들에게 달려있기 때문에 이 둘을 매개(mediation)하여 영적 존재들을 달래고 화(禍)를 막고 복을 빌어야 한다. 이 임무를 맡은 사람들이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무당(shaman)이다. 사람은 죽어서 저승으로 가게 되는데 전쟁이나 재난 등으로 갑자기 죽거나 세상에서의 할 일을 다 끝내지 못한 채 죽으면 원귀가 되어 저승으로 온전히 건너가지 못하고 이 세상의 사람들을 괴롭힌다. 저승은 황천(黃泉), 구천(九天), 또는 염라국(閻羅國)이라고 하는데, 이 염라국은 염라대왕과 함께 불교의 전승에서 기인하였다. 사람의 수명이 다하면 저승에서는 저승사자를 보내어 영혼을 데리러 오는데 이 저승사자를 일컬어 최판관(崔判官)이라고 불렀다. 죽은 자는 판관을 따라 염라대왕 앞에 가서 세상에서 행한 선행과 악행에 따라 걸맞은 처벌을 받게 된다는 것이 민간의 저승 신앙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 학자인 김안로(金安老)가 쓴 『용천담적기(龍泉談寂記)』에는 샤머니즘의 입장에서 민간이 생각했던 저승의 모습이 다음과 같이 아주 상세하게 나와 있다.

박생(朴生)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염병에 걸려 10여 일을 위독하게 앓다가 숨을 거두었다. 그의 혼이 홀연히 어딘가로 가는데 마치 어떤 아전들이 쫓아와 잡으려 하는 듯 하여 도망을 가서 광막한 사막을 지나 한 곳에 이르니 궁전도 아니고 집도 아닌데, 말끔히 소제된 땅이 꽤나 널찍한데 단(壇)이 노천(露天)에 설치되어 있고 붉은 난간이 둘러져 있는 것이 마치 창(槍)이 꽂혀져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떤 관리들이 그 안에 줄지어 앉아 있고 머리는 소 같고 몸은 사람 같은 야차(夜叉)들이 뜰 아래 벌려 서 있었다. 그들이 박생이 오는 것을 보고는 뛰어 앞으로 나와 잡아서 마당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는 물이 끓는 가마 속에 던져 넣었다. 박생이 보니, 중과 여승, 남녀 할 것 없이 끓는 물속에 섞여 있었다. 박생은 가만히 생각하니, 그 사람들이 쌓여 있는 아래로 들어가게 되면 빠져 나오지 못하게 될 것 같아서 양손을 솥 표면에 대고 반듯이 누워서 떠 있었다. 한참 있다 야차가 쇠꼬챙이로 그를 꿰어서 땅에다 내 놓았다. 그런데도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 조금 있다 야차를 시켜 상급 관청으로 보내게 하였다. 큰 궁궐에 이르러 겹문을 들어가니 의자가 설치되어 있고 좌우에 탁자가 있는 것이 마치 지금의 관청과 같았다. 높은 면류관을 쓰고 수놓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그 위에 줄지어 앉아 있고 수레와 호위병들의 성대함은 마치 군왕(君王)과도 같았다. 서류 장부들은 구름처럼 쌓여 있고 판결의 도장이 벼락같이 찍혀지고 있었으며 파란 두건을 쓴 나졸들이 책상 아래 엎드려 있다가 문서들을 나른다. 이 엄숙하고 정숙한 장면이 인간 세상과는 아주 딴판이었다. 박생을 끌어와 묻기를, “너는 세상에서 어떤 일을 하였으며 또 어떤 직책을 맡아 보았냐.” 하니, 박생이, “세상에서 별다른 일은 하지 않았으며 직책은 의국(醫局)에 속해 있었으며 방서(方書)를 출납하는 일을 했습니다.” 하였다. 심문이 다 끝나니 관리가 관리들에게 두루 이것을 알렸다. 여러 관리들이 의논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은 운명이 다 끝나지 않았으니 올 사람이 아니다. 관리들이 저승 명부를 잘못 살피고서 이런 실책을 한 것이니, 이것을 어떻게 처리하지.” 하니, 그 중에 한 관리가 거동이 점잖은 품이 마치 우리 선대의 왕 같았는데, 그가 사사로이 박생을 끌고 자리 뒤쪽에 가서, “지금 너에게 떡을 줄 것인데 네가 만약 그 떡을 먹으면 다시는 세상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하였다. 박생이 엎드려 절하고 땀을 흠뻑 흘리고 물러났다. 과연 한 상자의 많은 떡을 가지고 와서는 박생에게 먹으라고 하였다. 박생이 거짓으로 먹는 체하고 몰래 품속으로 모두 집어 넣었다…(중략)…박생이 하직인사를 하고 서함(書函)을 받들고 나왔다. 처음 도착했을 때 사람을 물 끓는 가마솥에 던져 넣던 곳까지 나오니 처음 체포하던 옥졸이 박생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박생이 그 옥졸에게 따지기를, “관에서 이미 나를 놓아 주었는데 네가 감히 마음대로 구속하여 방자하게 못된 짓을 거리낌 없이 하는가.” 하였더니, 그 옥졸이 독살스럽게 말하기를, “나는 문을 지키는 사람이다. 관의 증명이 없으면 나가지 못한다.” 하였다. 박생이 서함을 보이며, “이것이 관의 증명이 아닌가.” 하니, 옥졸이, “그것은 문을 나가는 것과 관계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관에 가서 물어 보겠다.” 하고 가더니, 한참 있다가 돌아와서 말하기를, “이미 관의 승인이 있으니 너는 가도 좋다.” 하고는 하얀 삽살개 한 마리를 주면서 털이 많은 그 개를 따라 경계를 나가라고 하였다. 큰 강이 있는 곳에 이르자 삽살개는 날아가는 것 같이 뛰어 건너므로 박생도 몸을 날려 뛰어드니 강 복판에 빠지고 말았다. 그런데 무엇이 받아주는 데 마치 수레에 앉은 것처럼 편안하였다. 그리고 단지 바람 소리 물소리만 들리고 어디로 가는지 몰랐다. 그러다가 갑자기 눈을 떠 보니 자기 몸은 자리 위에 누워 있으며 아내와 자식들이 옆에서 울고 있고 친척들이 모여서 막 자기를 염(殮)하려고 모든 것을 갖추어 놓고 있었다(『龍泉談寂記』 有朴生者∘ 嘗染癘熱∘ 危革十餘日而氣盡∘ 魂蘧蘧有所適∘ 如有吏卒追押∘ 奔騰而去∘ 歷曠漠至一處∘ 不宮不室∘ 除地甚平敞∘ 循壇露設∘ 未櫺周匝∘ 如今槍累然∘ 有官人列坐其內∘ 牛頭人身夜叉之屬∘ 森立庭下∘ 見生至踴躍而前∘ 拿致于庭∘ 旋付湯鬵∘ 生見僧尼男女雜錯湯沸中∘ 竊念若入積人下∘ 懼不得出∘ 卽以兩手∘ 分據鬵面∘ 仰臥浮游∘ 良久夜叉以鈇串貫出置之地∘ 猶不覺痛苦∘ 俄令夜叉傳付上司∘ 行至大宮闕∘ 入重門∘ 設倚子左右几卓∘ 如今官府∘ 峨冕繡裳者∘ 列踞其上∘ 輿衛之盛如君王∘ 簿牒雲堆∘ 署判雷下∘ 靑頭胥吏羅伏案下行文書∘ 淸嚴峻肅∘ 迥非人世∘ 引生問曰∘ 爾在世有何行事∘ 且爲何等任職∘ 生對曰∘ 在世別無異行∘ 職隷醫局∘ 掌出納方書∘ 供畢∘ 吏白諸官人遍∘ 諸官人議曰∘ 此人運不窮不當來∘ 吏按冥籍失審覈∘ 以貽此謬∘ 何以處之∘ 其中一官人容儀郁穆∘ 似若我先代王∘ 私引生至座後謂曰∘ 今當賜爾餠餌∘ 爾若食下∘ 則更不返世矣∘ 生拜伏喘汗而退∘ 果以一榼盛餠餌∘ 逼令生喫∘ 生佯食潛納懷中盡… 生拜辭擎書函而出∘ 到初至湯鬵之所∘ 則初押之卒∘ 拘執不使放過∘ 生詰卒曰∘ 官旣遣我∘ 爾敢擅拘恣獰無憚乎∘ 卒厲氣答曰∘ 吾門者也∘ 非官驗不可出∘ 生視書函曰∘ 此非官驗乎∘ 卒曰非關出門∘ 吾將質于官∘ 去良久而返曰∘ 已得官旨∘ 汝可去∘ 付一白∘ 犬毛多 使導之出境∘ 至一大江∘ 乃跳越如飛∘ 生亦騰身躍入∘ 旋墜江心∘ 有物承之∘ 安如輿坐∘ 但聞風水聲∘ 不知所之∘ 忽覺開睫∘ 則身臥床席∘ 妻孥傍泣∘ 召集親黨∘ 方爲斂襲之具矣).

이와 같은 저승 설화는 우리나라 외에도 많은 민족의 전승에서 유사한 것들이 발견된다. 저승의 존재를 믿는 것은 이승의 자신의 존재가 영구히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유래되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의식과 존재가 영구히 소멸한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가장 높은 수준의 정신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고대로부터 이러한 믿음이 끈질기게 살아남았을 것이다. 그리고 내세의 존재는 현세에서의 부정의와 부도덕을 어느 정도는 정당화해준다. 즉 현세에서 부당하게 많은 것을 누린 자들과 사악한 자들이 내세에서라도 처벌받지 않는다면 세상의 선과 정의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라는 실존적 의문에 대한 소박한 응답이다. 이러한 믿음은 유교, 불교, 도교의 사상과 혼재되어 오늘날에도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표현되고 있다.

인간의 수명은 하늘이 정해준 것이고(天命), 죽음은 불가피한 것이다. 이때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원 없이 맞이하는 죽음이 좋은 죽음(善終)이므로 죽음은 가급적 피하고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살았으면 하는 것이 보통 한국인이 죽음을 바라보는 태도일 것이다. 덧붙여 한국인은 ‘고정된 실체로서의 자아(ego as a solid entity)’라기보다는 관계로서의 자아 개념에 더 익숙하기 때문에 해야 할 일-주로 가족과 사회에 대한 의무와 관련이 있다-을 다 하고 죽는 것은 그리 타기할 만한 것은 아니다. 개인의 생명은 전체와의 관계를 통해 영속한다는 믿음이 암암리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노인의 죽음을 호상(好喪)이라 하여 공동체가 애도 보다는 오히려 축제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덧붙여 생사를 초월한 엘리트들의 죽음-공적 정의를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린 선비와 열사들, 죽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초연히 받아들인 고승과 대덕들, 자연에 은거하여 명리를 잊고 살다가 고요히 자연으로 돌아간 군자들의 모습은 이상적인 죽음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귀감이 되고 있다. 죽음을 둘러싼 이렇게 풍요한 내러티브와 삶과 죽음에 관한 고상한 사유들은 개인에게 스스로를 죽일 권리가 있는가 없는가 하는 근대적 논의를 때로는 사소한 것으로 만들기도 한다. 사회적으로 분분한 여러 죽음에 관한 논의들 속에서 우리는 조상 전래의 죽음에 대한 사유와 내러티브들을 발굴하고, 현대 한국인에게 미치는 그 흔적들을 따라갈 필요가 있다. 그것이 오히려 이 핵심적인 문제에 대해 보다 큰 시사점을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다.

  1. Korean Classics Database [Internet]. Seoul: Institute for the Translation of Korean Classics; 2013 cited 2013 Aug 1 Available from; http://www.itkc.or.kr/itkc/Index.j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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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

Review Article

J Hosp Palliat Care 2013; 16(3): 155-165

Published online September 1, 2013 https://doi.org/10.14475/kjhpc.2013.16.3.155

Copyright © Journal of Hospice and Palliative Care.

Koreans' Traditional View on Death

Ivo Kwon

Department of Medical Education, Ewha Womans University School of Medicine, Seoul, Korea

Correspondence to:Ivo Kwon
Department of Medical Education, Ewha Womans University School of Medicine, 1071 Anyangcheon-ro, Yangcheon-gu, Seoul 158-710, Korea
Tel: +82-2-2650-5758, Fax: +82-2-2653-1136, E-mail: kivo@ewha.ac.kr

Received: August 21, 2013; Revised: August 24, 2013; Accepted: August 28, 2013

Abstract

Koreans’ traditional view on death has been much influenced by Confucianism, Taoism, Buddhism, and shamanism since ancient times. Confucianism emphasizes the importance of the real life in this world and highly praises doing good deeds for the family and the community. It also praises people who are enlightened by education and self-discipline. Confucian scholars admit that death cannot be understood by rational thinking although it is unavoidable as a cosmic order. Taoism sees life as the same entity as death; Both are two different aspects of the same cosmos or the wholeness. However, the disciples of Taoism became much interested in a long life and well being that may be achieved by harmonizing with the cosmic order. Buddhism thinks that death and life are an “illusion”. It says that people can be enlightened by recognizing the fact that “Nothing is born and nothing is dying in this world. Everything is the product of your mind occupied with false belief.” However, secular Buddhists believe in the afterlife and metempsychosis of the soul. This belief is sometimes connected with the view of the traditional shamanism. Shamanism dichotomizes the world between “this world” and “that world”. After death, the person’s soul travels to “that world”, where it may influence life of people who reside in “this world”. And shamans who are spiritual beings living in “this world” mediate souls and living people. In conclusion, there are various views and beliefs regarding death, which are influenced by a number of religions and philosophies. They should be seriously considered when making a medical decision regarding the end of patients’ life.

Keywords: Key Words: Republic of Korea, Confucianism, Shamanism, Buddhism, Death, Attitude, Culture

서 론

한국인의 죽음관이란 한국인이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을 뜻한다.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은 곧 삶을 바라보는 시각의 이면이다. 그러므로 죽음관이란 곧 삶에 대한 태도를 의미할 것이다. 죽음은 삶의 끝이고, 삶은 죽음이 연장된 상태이다. 어떻게 보면 인간은 태어나서 계속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삶은 죽음이 연장, 혹은 유보된 상태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삶은 죽음을 내포하고 있고, 죽음은 또 다른 삶을 내포하고 있다. 한국인에게 한 개체의 죽음이란 또 다른 개체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생이 이어지는 계기가 된다. 한국의 대표적인 의례인 관혼상제(冠婚喪祭)는 어린이가 자라 성인으로서 사회의 온전한 구성원이 되는 관례(冠禮), 또 다른 생명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혼례(婚禮), 모든 이에게 궁극적으로 닥쳐오는 죽음의 의례인 상례(喪禮), 그리고 죽은 자를 기리며 산 자에게 그 죽음의 의미를 묻는 제례(祭禮)를 말한다. 이러한 예식들은 다른 종교의 예식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인들에게 개체를 전체 공동체와, 이승을 저승과 통합시키고 어떤 의미와 질서를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삶과 죽음에 대한 시각은 바로 인생의 궁극적 질문, 즉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으며 이 모든 일들은 왜 생기는가? 하는 종교적 질문과 관련이 있다. 한국인의 종교적 심성은 전통적인 샤머니즘을 바탕으로 하여 삼국시대 이후 유교와 도교, 불교의 깊은 영향을 받아 왔다. 이 고등 사상들은 서로 겹치고 상호작용을 하면서 한국인의 죽음관, 또는 생사관을 형성하여 왔다. 어느 하나가 온전한 한국인의 죽음관을 대변할 수는 없으며, 역사의 흐름에 따라 그러한 사상의 구체적인 모습들도 크게 달라져 왔다. 하지만 한국인의 죽음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들 사상이 제시하는 삶과 죽음의 모습들로 돌아가 보아야 할 것이다. 그 위에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한국인의 조상들이 실제로 삶과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서술하고 기록하였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 제시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그 간략한 모습이다. 이러한 전통 한국인의 죽음관의 이해는 연명 치료와 관련된 의료 기술이 크게 발전하고 인구의 고령화가 심화되고 있는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의료 현장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하나의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유교의 죽음관

1. 자연으로서의 죽음

한국인의 죽음관을 한마디로 서술하면 죽음은 ‘자연(自然)’이다. 여기서 자연(自然)은 영어의 ‘nature’의 의미가 아니라 ‘절로 그러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영어의 ‘nature’는 인위적인 것과 대비되는 자연환경을 의미하거나 혹은 사물의 본성을 의미한다. ‘Nature’의 번역어인 ‘본성(本性)’은 원래 그것이 유래한 불교적 맥락과는 좀 다르게, 서양철학의 입장에서 보자면 창조주가 부여한 고정된 성질의 뜻이 강하다. 그러나 ‘自然’이라 함은 어떤 고정된 성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동적인 것, 변화하는 어떤 것, 사물이 그렇게 되어가게끔 될 수밖에 없는 바로 그 모습을 의미한다. 서양철학의 언어들이 특정 대상(objects)들의 의미를 고정하고, 그 형상을 기술하고, 그 ‘본성’을 서술하는 것과 달리 한국인이 사용하는 언어들은 주로 어떤 국면에 대한 묘사일 뿐이다. 즉 이 세계의 사태에 대한 정(情), 또는 정황(情況)을 각자의 합리적/감정적 판단까지 덧붙여서 “아 그러하구나!”라고 스스로에게, 또는 타인에게 전달하는 기능을 한다. 다시 말해서 죽음이 ‘자연’이라는 언명은 죽음은 모든 이에게 닥쳐오며, 인위로 어찌할 도리가 없으며, 이는 인간을 포함한 우주 만물의 궁극적 질서에 속하는 현상이라는 일종의 영탄(詠嘆)이다. 즉 인간은 자연과 분리되는 어떤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인간의 질서는 언제나 자연의 질서에 순응한다. 인간 역시 ‘절로 그러한’ 존재이며, 인간을 둘러싼 만물의 세계 역시 ‘절로 그러하기’ 때문이다. 이는 신이 세상을 창조하고, 그 세상을 관리하기 위해 인간을 별도로 창조하였다는 기독교의 인간관-우주관과는 전혀 다른 세계이다. 기독교의 인간관-우주관에서 인간의 육신을 포함한 모든 만물은 ‘물질’의 세계에 속해 있고, 그 ‘물질’은 신의 뜻에 의해 무로부터 창조되었으나 인간을 이루는 핵심인 ‘영혼’은 신에게 속한 불멸의 것이고, 이 세상에서의 행업에 따라 영원한 복을 누리든, 혹은 영원한 벌을 받든 할 것이다. 물질은 소멸하나 신 자체에서 비롯된 영혼은 소멸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식의 영혼-육신 이원론은 한국인에게는 전혀 낯선 것이다. 영혼은 시간과 무관한 고정된 ‘실체’이지만, 한국인에게 인간을 포함한 모든 만물(존재하는 것, 존재자)은 영원히 생성하고 소멸하는 흐름, 즉 천지의 운행(運行)에 의존해 있는 것이다. 조선 건국의 주역인 성리학자 정도전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과 만물이 연이어 생겨나는 것이 무궁한 까닭은 곧 천지(天地)의 조화가 끊임없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원래 태극(太極)에 동(動)과 정(靜)이 있어 음양(陰陽)이 생기고, 음양(陰陽)이 변하고 또 합하여 우주를 이루는 다섯 원소(五行)가 갖추어진다. 이에 무극태극(無極太極)의 진(眞)과 음양오행의 정(情)이 묘하게 합하여 사람과 만물이 나고 또 나는 것이다. 이미 생긴 것은 가서 돌아오지 아니하고, 생겨나지 않았던 것이 와서 잇게 되니 그 사이가 잠깐(一息)도 멈추지 않는 것이다(『東文選 第百五券』 「佛氏輪廻之辨」: 人物之生生而無窮 乃天地之化 運行而不已者也 原夫大極有動靜而陰陽生 陰陽有變合而五行具 於是 無極大極之眞 陰陽五行之精 妙合而凝 人物生生焉 其已生者往而過 未生者來而續其間不容一息之停也. 본 논문에서 인용한 『동문선』의 번역문은 한국고전번역원의 한국고전종합DB를 참고하여 일부 수정하였다.)(1).

이는 성리학자의 말이지만, 불교나 도교 역시 인간을 포함한 이 세상의 존재자를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의 차이는 근본적인 우주관에 있기 보다는 오히려 인간 사회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그리고 수행의 방식에 있다. 서양식으로 말하면 자연학(물리학)의 차이는 작지만, 윤리학(ethics)의 차이는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을 포함한 만물(人物)이 끝도 없이 생겨나는 것은 우주의 조화인 것이다. 천지(天地)는 하늘과 땅이 아닌 질서가 있는 우주 전체(cosmos)를 의미한다. 뒤집어 말하면 질서가 있기 때문에 사람과 만물이 “존재”하는 것이다. 질서가 없다면, 즉 카오스의 상태라면 사람과 만물이라는 각 존재자가 존재자끼리 구별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동(動)과 정(靜)도 마찬가지인데 움직임이 있으니 정지함이 있고, 정지함이 있으니 움직임이 가능하다. 음양(陰陽) 역시 이러한 상보적인 관련이 있다. 즉 서로의 존재는 서로에게 의존해 있는 것이다. 진(眞)은 서양철학에서의 형상과 흡사하며, 정(情)은 질료와 흡사하지만, 이 둘은 서로 완전히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생겼다 사라지는 존재자의 어떤 국면을 표현하는 말일 뿐이다. 즉 모든 존재자는 계속해서 태어나고 소멸하며 한 시도 쉬지 않는다(生生不息). 이는 우주에 대한 동적인 기술이고 사람도 그 안에 포함된다. 그렇기 때문에 정도전은 계속해서 말하기를 “천지의 변화가 비록 끊임없이 태어나고 또 태어나는데 모이면 반드시 흩어지고, 태어나면 반드시 죽음이 있다. 그 처음을 따져 모여 생기는 것을 알면 그 후에는 반드시 흩어져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東文選 第百五券』 「佛氏輪廻之辨」: 天地之化∘ 雖生生不窮∘ 然而有聚必有散∘ 有生必有死∘ 能原其始而知其聚之生∘ 則必知其後之必散而死).”고 하였다. 또한 혼(魂)에 대해서는 “형체가 이미 생기면 신(神)이 발동하여 의식을 알게 된다 하였으니 형체는 몸이며, 신은 혼이다. 불이 나무를 인연으로 하여 존재하는 것은 혼과 몸이 합하여 사는 것과 같다. 불이 꺼지면 연기는 올라가서 하늘로 올라가고, 재는 내려와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사람이 죽으면 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몸은 땅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불의 연기는 곧 사람의 혼기(魂氣)요, 불의 재는 곧 사람의 몸이다. 불기운이 없어진 후 연기나 재가 다시 합하여 불이 되지 못하는 것은 사람이 죽은 후에 혼과 몸이 다시 합하여 산 사람이 될 수 없는 것과 같다”고도 하였다(『東文選 第百五券』 「佛氏輪廻之辨」: 形旣生矣 神發知矣 形魄也 神魂也 火緣木而存 猶魂魄合而生 火滅則烟氣升而歸于天 灰燼降而歸于地 猶人死則魂氣升于天 體魄降于地 火之烟氣 卽人之魂氣火之灰燼 卽人之體魄 且火氣滅矣 烟氣灰燼 不復合而爲火)(2).

여기서 정도전은 혼(魂)의 존재를 인정하지만 이 역시 우주의 기가 특정한 모습으로 모인 것이고 혼 역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한다. 인간의 의식(神)이란 혼과 몸이 하나로 합쳐졌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여기서 성리학은 불교와 갈라지는데, 통상적인 불교 신앙에서는 뭇 생명체의 어떠한 의식, 또는 혼이 해탈에 이를 때까지는 육도삼계(六道三界)를 ‘윤회’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는 일종의 영혼불멸설과 상통하는 바가 있지만, 실제 불교의 교리에서는 훨씬 복잡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윤회설은 이승에서의 선업, 혹은 악업에 따라 내세에서 어떤 삶을 살게 되는가가 결정된다는 단순화된 세간의 믿음으로 초기부터 받아들여졌고, 불교 죽음관의 한 특징이 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다시 설명하도록 하겠다.

생명을 가진 존재로서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역시 죽음은 좋지 않고, 삶이 좋다는 생각은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고려의 학자 백운 이규보는 동국이상국집에서 “삶을 탐하고 죽음을 싫어하는 것은 만물의 상태(『東國李相國後集』 第3卷 「古律詩. 猒生唅」: 貪生忌死是物情)”라고 하였고, 순암 안정복은 “삶을 좋아하고 죽음을 싫어하는 것은 사람과 만물의 공통적인 상태(『順菴先生文集』 第1卷 「題烈女驪興李氏行錄後」: 好生惡死 人物通情)”라고 하였다. 근본적으로 삶이란 인간과 만물이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고자 하는 힘에서 비롯되며 죽음은 그 존재자가 소멸하는 것이다. 당연히 모든 존재자는 자신의 존재를 지속시키고자 하는 타성이 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떤 존재자도 존재자로서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 모든 존재자는 결국은 소멸하게 되어 있다. 특히 인간의 경우 이는 자신의 존재의 소멸에 대한 궁극적인 두려움과 함께 사후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미련이 남아 있게 되어 있다. 사실 모든 존재자가 소멸하니, 인간 역시 소멸한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은 고도의 수련을 거친 정신에게나 가능한 일이며 평범한 사람들은 역시 사후세계의 존재 가능성, 그리고 그 사후 세계에서 본인의 운명에 대한 의문을 품기 마련이다. 덧붙여 이 세상에서 사랑하던 사람들과 좋아하던 것들을 더 이상 즐길 수 없게 된다는 사실 역시 죽음을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일로 만드는 것이다.

2. 생명의 가치: 좋은 죽음(善終)과 치열한 죽음

유교에서 바라볼 때 좋은 죽음(善終)은 좋은 삶의 결과이다. 좋은 삶이란 행복한 삶이다. 좋은 삶이란 복(福)이 있는 삶, 즉 행복한 삶이다. 서경(書經)에 나오는 복은 다섯 가지 복, 즉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그리고 고종명(考終命)을 의미한다(『書經』 「洪範」: 一曰壽 二曰富 三曰康寧 四曰攸好德 五曰考終命) 수는 장수를, 부는 부유함을, 강녕은 몸의 건강을, 유호덕은 덕을 좋아하며 즐기는 것과 함께 그리 함으로써 사회에서 인정을 받는 것을, 그리고 고종명은 모든 소망을 달성한 다음 객지가 아닌 자기 집에서 편안하게 죽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서경의 오복은 일반 민중이 아닌 지배층을 위한 것으로, 일반 민중을 위한 오복은 중국 청대의 학자 적호(翟灝)의 통속편(通俗編)에 나와 있는데 부유함 대신 부귀(富貴), 그리고 고종명 대신에 여러 자녀를 두는 것(子孫衆多)로 되어 있다. 민중의 입장에서는 사인(士人)류의 지배층과 달리 덕을 추구하며 살다가 자신의 소명을 완수하고 죽는 것과 달리 자손을 많이 두는 것이 더 행복한 일로 여겨졌을 것이다. 어쨌든 요약하면 부귀와 영화를 누리며, 할 일을 다 할 만큼 건강하게 충분히 살며, 자손을 많이 두고 어느 시점에서 잘 죽는 것이 바로 좋은 죽음이며, 이 또한 인생을 요약하는 행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고종명(考終命)을 좀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고종명이란 할 일을 다 한 삶, 즉 직업적인 성공과 자녀의 교육 및 혼사를 다 마무리하고 나서 맞이하는 죽음이며 천재지변이나 사고, 전란에서 죽는 죽음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물론 전쟁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한 죽음은 순사(殉死)나 의로운 죽음으로 별도로 취급한다. 그리고 객지에서 죽는 죽음이 아니라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맞이하는 죽음을 의미한다. 논어에서는 공자의 제자 증자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증자가 병이 들어 제자들을 불러 모아서는 발을 펴 보고 손을 펴 보라고 하였다. 시경에 말하기를 전전긍긍하여 깊은 연못을 건너는 듯하고, 얇은 얼음을 밟는 듯 하였는데 이제야 모든 것을 벗어났음을 알겠다고 하였다(『論語』 「泰伯」: 曾子有疾 召門弟子曰 啓予足 啓予手. 詩云 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 而今而後 吾知免夫 小子). 이 구절은 삶을 잘 살기가 매우 어려움을 말해준다. 즉 일찍 죽지 않고, 재난을 당해 죽지 않고, 사고를 당해 큰 부상을 입지 않고, 형벌을 입어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개인적인 삶의 차원에서도 잘 사는 것이지만, 부모에 대한 효도의 시각에서 볼 때도 고대에는 쉽지 않았던 일이다. 그러므로 평생을 ‘전전긍긍’하며 조심스럽게 살다가 몸을 온전히 지키고 할 일을 다 한 다음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이 바로 증자가 보여주는 죽음의 모습이다.

유교에서는 삶을 중시하고 삶과 생명에 큰 가치를 부여하지만 이렇게 다가오는 죽음을 부정하지는 않으며 죽음 뒤의 세계나 죽음의 의미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다. 공자는 제자 계로(季路)가 귀신을 어떻게 섬기는지에 대해서 묻자 “사람을 잘 섬기지도 못하면서 어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는가? 삶도 모르는데 죽음을 어찌 알겠는가?” (『論語』 「先進」: 季路問事鬼神 子曰 未能事人 焉能事鬼 敢問死 曰未知生 焉知死) 하고 되물었으며 평소 기이한 것, 신이한 것, 힘쓰는 것 등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유교를 지탱하고 있는 합리적 사고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가 모두 죽음을 맞이한다는 사실은 변함없는 진리이지만, 죽음 그 자체가 무엇이며 또 사후에 어떻게 되는가 하는 문제는 합리적 사고의 범위를 뛰어넘는 것이고 따라서 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편이 옳은 일이다. “죽음은 무엇인가?”, “죽은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가?”는 유교의 핵심적 질문이 아니라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잘 죽을 수 있는 것인가?”가 핵심적 질문이다(3).

삶과 생명을 중시하고, 뭇 생명이 자신이 가진 모든 생의 역량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바로 유교의 핵심 이념인 인(仁)이다. 맹자에 의하면 모든 죽어가는, 혹은 죽을 운명인 존재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측은지심(惻隱之心)-이 바로 인(仁)의 근거이며, 이는 인간이라면 모두가 구비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이 선한 이유는 바로 이 측은지심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음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아기가 우물을 향해 기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면 누구나 놀라고 측은한 마음을 느끼는데 이는 그 아기의 부모를 알아서도 아니고, 동네 친구들에게서 이름을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며 아기가 우는 소리가 싫어서도 아니다(『孟子』 「公孫丑上」: 今人乍見孺子將入於井 皆有怵惕惻隱之心 非所以內交於孺子之父母也 非所以要譽於鄕黨朋友也 非惡其聲而然也).

이 측은지심은 바로 삶을 좋아하는 마음(好生之心)이라 할 수 있다. 누구나 자신이 죽을 존재임을 알고, 또 뭇 생명들도 죽어야 하는 존재임을 알기 때문에 죽음이 피할 수 없는 일이라 하더라도 가급적 생명을 사랑하고 생명 있는 것들이 제 몫을 다하게끔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이 측은지심은 사람뿐 아니라 다른 동물들에게도 향한다. 제나라의 선왕(宣王)이 맹자에게 정치에 대해서 묻자 맹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호흘(胡齕)이 이렇게 말하는 바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왕께서 당상에 계실 때에 소를 이끌고 당 아래를 지나는 사람이 있어 왕이 그것을 보시고 그 소는 어디에 쓰려 하느냐?고 묻자 그 사람이 말하기를 장차 흔종(釁鍾-종을 만들 때 소 피를 바르는 제사)에 쓰려 합니다고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나는 그 소가 떨면서 죄도 없이 죽으러 가는 모습을 차마 견디지 못하겠다. 그 사람이 말하기를 그러면 흔종제사를 하지 말까요? 라고 하자 왕은 어찌 제사를 폐하겠느냐. 양으로 바꾸어라(『孟子』 「梁惠王上」: 曰臣聞之胡齕 曰王坐於堂上 有牽牛而過堂下者 王見之 曰牛何之 對曰 將以釁鐘 王曰 舍之 吾不忍其觳觫若無罪而就死地 對曰 然則癈釁鍾與 曰 何可癈也 以羊易之).

맹자는 바로 이런 마음으로 정치를 하는 것이 왕도정치의 요체라 하였다. 즉 짐승이나 미물에 대해서도 측은한 마음을 가지고 그 삶을 보살펴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유교는 대의를 위해서는 목숨을 초개같이 버리는 모습을 높이 평가하였다. 개인의 삶을 온전한 개인의 삶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서 시작해서 미래로 이어지는 연속선상에서, 그리고 그 연속을 가능하게 하는 공동체의 시각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물론 서양에서도 국가나 사회를 위해, 이웃을 위해, 또는 신을 위해 목숨을 던지는 행위를 높이 평가해 왔다. 그러나 이 경우는 신에 의해 사후 세계에서 그만큼의 보답을 받는 것이고, 기독교에서는 부활 신앙으로 이를 보증하였지만 유교의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다. 국가나 사회의 대의를 위해 목숨을 던졌을 때 기대하는 바는 후세의 사람들이 자신의 떳떳한 행동을 알아주는 것이다. 정도전은 나주 사람 정침(鄭沉)의 전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 죽고 사는 문제는 본시 크다. 그러나 종종 죽음을 보기를 자기가 돌아갈 곳처럼 생각하는 이가 있는데, 그것은 대의와 명분을 위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선비가 의리상 꼭 죽어야 할 일을 당할 때 비록 끓는 가마가 앞에 놓여 있으며 칼과 톱이 뒤에 있다거나, 또는 화살과 돌이 위에서 쏟아지며 흰 칼날이 밑에서 몰아오더라도, 여기에 부딪치기를 사양하지 아니하고, 그 속으로 뛰어들어 피하지 아니함은 의리는 무겁고 죽음은 가볍게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과연 글을 잘하는 선비가 훗날 이것을 서술하여 기록으로 나타내면 그의 영웅다운 명성과 의로운 기운이 사람의 눈과 귀를 밝게 비칠 것이며, 사람의 마음과 뜻을 감동시킬 것이며, 그는 비록 죽었을망정 죽지 아니하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東文選』 「一百一券」: 嗟乎 死生固大矣 然人往往有視死如歸者 爲義與名也 彼自重之士 當其義之可以死也 雖湯鑊在前 刀鋸在後 矢石注於上 白刃交於下 觸之而不辭 蹈之而不避 豈非義爲重死爲輕歟 果有能言之士 述之於後 著在簡編 其英聲義烈 照耀人耳目 聳動人心志 其人雖死 有不死者存焉).

이와 같은 의열(義烈)의 태도는 우리 역사에서 언제나 흔히 볼 수 있었던 모습이며 심지어 원래 살생을 금했던 불교에서도 신라의 원광법사가 화랑에게 준 세속오계에서 “싸움에서는 물러서지 않는다(臨戰無退)”라 하여 의리와 용기를 권면했고, 그것이 이후의 호국불교 사상으로 이어지는 것은 특이하다. 이는 자연에의 순응과 불로장생을 추구하는 노장(老莊)적인 태도와 커다란 대비를 이룬다.

노장 사상과 죽음

1. 노장의 죽음관

노장 사상은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과 장자(莊子)의 저술을 가르침을 근간으로 한다. 장자에 의하면 삶과 죽음은 그야말로 저절로 그러함, 즉 자연(自然)이다. 이 저절로 그러함을 체화한 진인(眞人)은 삶을 얻었다고 기뻐하지도, 죽음을 맞는다고 슬퍼하지도 않는다. 오직 있는 것은 무심(無心)함일 뿐이다. 그래서 장자는 이렇게 말한다. “옛 진인은 삶을 즐거워할 줄도 몰랐고, 죽음을 싫어할 줄도 몰랐다. 태어났다고 기뻐하지도, 죽는다고 꺼려하지도 않았다. 소연히 가서, 소연히 올 뿐이었다. 그 시초를 잊지 않았고, 그 끝을 일부러 구하지 않았다. 생을 받으면 기뻐하고, 죽으면 목숨을 돌려보냈다. 이를 일컬어 마음으로 도를 상하지 않고 인위로 자연을 돕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사람이 진인이다(『莊子』 「大宗師」 : 古之眞人 不知說生 不知惡死 其出不訢 其入不距 翛然而往 翛然而來而已矣 不忘其所始 不求其所終 受而喜之 忘而復之 是之謂不以心損道 不以人助天 是之謂眞人).” 이렇게 죽음을 바라본 장자는 자신의 아내가 죽었을 때 혜시(惠施)가 문상을 오자 질그릇을 두들기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혜시가 놀라 그 이유를 물으니 장자는 이렇게 답한다. “어찌 슬퍼하는 마음이 없었겠나. 그러나 본래 아무것도 없었는데 순식간에 변화하여 기(氣)가 생기고, 기가 변화하여 형체가 생기고, 형체가 변화하여 생명이 생겼고, 이제 또 변하여 죽게 되었는데 이는 춘하추동과 사시의 운행이나 마찬가지라 내가 곡을 한다면 천명과 통하지 못하는 것이라 곡을 그친 것 뿐이네(『莊子』 「至樂」 : 莊子妻既死,惠子弔之, 莊子則方箕踞鼓盆而歌∘ 惠子曰: 「與人居, 長子、 老、 身死, 不哭, 亦足一, 又鼓盆而歌, 不亦甚乎!」 莊子曰: 「不然∘ 是其始死也, 我獨何能乇氣∘ 雜手芒芴之間, 變而有氣, 氣變而有形, 形變而有生, 今又變而之死, 是相與為春秋冬夏四時行也∘ 不且偃然寢於巨室, 而我噭噭隨而哭之, 自以為不通手命, 故止也).” 이는 태어났다고 기뻐하지 않고, 죽었다고 슬퍼하지 않는 진인의 태도와 지극히 일치한다. 또 같은 지락(至樂)편에서 장자는 열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열자가 길을 가다가 백 년 된 해골을 보고는 풀줄기를 뽑아 이를 가리키며 말하기를 오직 나와 자네만이 일찍이 태어남도 없고, 일찍이 죽음도 없음을 알고 있다. 아직 죽음을 맛보지 않았으며 삶도 맛보지 않았음을 알고 있다네. 자네는 그래서 슬퍼하고 있는가? 나는 살아서 기뻐하고 있는가? (『莊子』 「至樂」 : 列子行食於道從 見百歲髑髏 攐蓬而指之曰 唯予與汝 知而未嘗死 未嘗生也 若果養乎 予果歡乎) 여기서 이미 죽은 해골과 살아있는 열자는 사실 둘로 구별되는 존재가 아니다. 살아있음이 곧 죽음이고 죽음이 곧 삶이다. 삶과 죽음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고, 역시 살았다고 기쁠 것도, 죽었다고 슬플 것도 없다.

이러한 세계관에서는 죽음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산다거나, 혹은 죽었다가 영혼이 언젠가는 부활할 것이라는 기독교의 세계관은 전혀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영원한 삶이나, 혹은 육신의 부활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장자는 다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장자가 초나라로 가는 길에 해골을 보았다. 해골은 말라비틀어졌지만 형체는 유지하고 있었다. 장자는 말채찍으로 그것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대는 목숨을 탐하고 이치를 잃어 이 꼴이 되었는가? 나라가 망할 때를 당해서 처형을 당해 이 꼴이 되었는가? 선한 일을 하지 않고 부모와 처자에게 미움을 받아 이 꼴이 되었는가? 춥고 굶주려 이 꼴이 되었는가? 이 말을 마치고 그 해골을 끌어당겨 베고 잠들었다. 밤중에 해골이 꿈에 나타나 말했다. 자네 말은 말만 그럴싸한 말재주꾼과 같다. 자네가 한 말은 모두 살아있는 자들의 근심거리지. 죽으면 그런 것이 없다네. 죽음의 기쁨을 들어보겠나? 장자가 “그렇게 하겠네.” 하고 말하자 해골이 말하기를 죽으면 위로는 임금도 없고 아래로는 신하도 없지. 사계절의 변화도 없다네. 온 우주를 시간으로 삼으니 왕의 즐거움도 이보다는 못할 걸세. 장자가 믿지 못하고 말하였다. 내가 조물주를 시켜 다시 그대의 몸을 돌려주고 뼈와 살과 피부를 만들어 부모처자와 동네 아는 사람들에게 돌려준다면 그렇게 하겠나? 해골이 매우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기를 내가 어찌 왕의 즐거움을 버리고 다시 인간세의 곤고함으로 돌아가겠는가? 하고 말하였다(『莊子』 「至樂」 : 莊子之楚, 見空躅髏, 髐然有形, 撽以馬捶因而問之, 曰夫子貪生失理, 而爲此乎 將子有亡國之事, 斧鉞之誅, 而爲此乎, 將子有不善之行, 愧遺父母妻子之醜, 而爲此乎, 將子有凍餒之患, 而爲此乎, 將子之春秋故及此乎, 於是語卒, 援髑髏, 枕而臥. 夜半, 髑髏見夢曰, 子之談者似辯士. 視子所言, 皆生人之累也, 死則无此矣. 子欲聞死之說乎. 莊子曰 然. 髑髏曰, 死, 无君於上, 无臣於下, 亦无四時之事, 從然以天地爲春秋, 雖南面王樂, 不能過也. 莊子不信曰, 吾使司命復生子形, 爲子骨肉肌膚, 反子父母妻子閭里知識, 子欲之乎 髑髏深矉蹙頞曰, 吾安能棄南面王樂, 而復爲人間之勞乎).

유교 사상에서는 죽음은 불가피한 일이지만 그래도 삶이 더 낫고, 삶을 사는 동안 이에 충실해야 한다고 믿는 반면에 노장 사상에서는 죽음과 삶 중에 더 좋을 것도, 더 나쁠 것도 없으며 오히려 이렇게 사는 것이 자연의 만물이 흘러가는 길인 도(道)를 따르는 것이라 본다. 그럴 때 삶도 태평할 것이고 죽음도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게 된다. 조선 성종 때의 학자이자 음악가인 성현(成俔)이 쓴 ‘부휴자전(浮休子傳)’은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거사 부휴자의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전한다.

거사는 말하기를, “살아서 세상에 우거한다는 것은 둥둥 뜬 것과 같고 죽어서 세상을 떠나는 것은 휴식하는 것과 같다. 높은 수레와 좋은 말을 타고 띠를 두르고 사제(沙堤)로 달리는 것은 우연히 오는 벼슬이자 나의 소유는 아니요, 정신을 거두고 숨을 거두어 형백(形魄)으로 화해서 무덤(斧屋)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바로 사람이 진(眞)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나도 또한 면할 수 없는 일이다. 안으로 족히 도를 즐기며 죽고 사는 것이 마음을 어지럽게 하지 아니하면, 둥둥 떠서 산다 해서 무슨 영광이며, 휴식하는 것처럼 죽는다 해서 무엇이 슬프겠는가. 나는 도를 배우는 것이지 외물을 사모하는 것은 아니다(『續東文選 券十七』 「浮休子傳」 : 居士曰 生而寓乎世也若浮 死而去乎世也若休 高車駿馬 襲圭組而行沙提者 軒冕之儅來寄也 非吾之所有也 收神歛息 化形魄而就斧屋 是人之反眞也 非亦何榮 休亦何傷 吾師道也 非慕外物也).”

한편 이와 같은 태도는 삶과 죽음에 대해 초탈하며 인생의 쾌락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고려 말의 학자 이혼(李混)이 쓴 “옛 것을 본받아(擬古)”라는 시는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어제는 꽃이 나무에 가득하다가/ 오늘은 가지에서 떨어지네/ 동풍은 무엇이 그리 바빠/ 꽃 피우기에 쉬지 않는가/ 꽃이 피어도 기뻐하지 말고/ 꽃이 떨어져도 슬퍼하지 말자/ 이 꽃이 이미 떨어졌지만/ 다시 필 때가 오리라/ 보아라 저 청동 거울 속에/ 붉은 얼굴이 날로 쇠하는 모습을/ 현자나 바보나 모두 먼지로 돌아가니/ 허물어진 무덤만 텅 빈 채로 총총/ 두어라 맛있는 술이나 마시련다/ 가련하고 슬퍼해야 마침내 무엇에 쓰랴(『東文選 券四』 「擬古」 : 昨日花滿樹 今日花辭枝 東風有何忙 開花無停期 花開亦莫喜 花落亦莫悲 此花雖已落 還復有開時 不見靑銅裏 朱顔日日衰 賢愚同歸盡 毀塚空纍纍 置之飮美酒 惻愴終何爲).”

2. 불로장생의 의지

원래 노장 사상은 삶과 죽음에 큰 미련을 두지 않고 자신의 존재를 모두 잊고 우주 만물과 하나가 되는 것(坐忘)을 이상적인 경지라 보았지만, 후세의 사람들은 이와 같은 경지에 도달하면 생명이 원래 가지고 태어난 원기(元氣)를 잘 보존하여 늙지 않고 장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미 도와 하나가 되면 생사의 대립을 넘어서서 몸을 잊어버리고 죽음을 느끼지 못하게 되면 이런 사람의 몸은 물과 불에도 손상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순수한 기(純氣)를 지키기 때문인데 이 순기란 만물이 발생하는 최초의 상태인 원기(元氣)라는 것이다(3). 이런 상태로 회복하기 위해서는 많은 수행을 해야 하며 이러한 수행을 하면 불로장생을 하고, 신선이 된다는 소위 ‘황로지술(黃老之術)’이 태어난 것이다(4). 이와 같은 믿음은 건강하게 장수하고 싶은 사람들의 열망에 부응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고 의술에 깊은 영향을 주었는데,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황로지술의 방법은 호흡법, 일종의 체조인 도인술(導引術)과 마사지, 다이어트와 특정한 약물의 복용, 성관계의 절제 등으로 구성되는데 고려의 학자 이인로(李仁老)는 “소동파를 본받아 일찍 일어나 머리를 빗다”는 시에서 그러한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등불이 가물거려 심지를 이어주고/ 바다는 광활하여 일출을 머금었네

묵묵히 앉아 오래 숨을 참고/ 단전을 손으로 주물러주네

세어버린 머리카락은 천 가닥으로 날리고/ 오래 묵은 빗은 초승달 모양

손을 타고 사락사락 떨어지는 것은/ 가벼운 바람이 눈발을 날리는 듯

쇠를 달구면 더욱 순수해지듯/ 백 번을 단련해도 충분하지 않구나

어찌 몸만 상쾌할 것인가/ 목숨 또한 걸림 없이 만들 것을

늙은 닭은 거름밭에서 퍼덕이고/ 지친 말은 모래에 몸을 비비니

이 또한 능히 스스로를 다스리는 길이라고/ 소동파에게 들은 바 있노라

(『東文選 券四』 [早起梳頭效東坡] : 燈殘綴玊葩 海闊涵金鴉 默坐久閉息 丹田手自摩 衰鬢千絲亂 舊梳新月斜 逐手落霏霏 輕風掃雪華 如金鍊益精 百鍊未爲多 豈唯身得快 亦使壽無涯 老鷄浴糞土 倦馬風沙 此亦能自養 聞之自東坡)

숨을 참고, 단전을 주무르고, 머리를 빗는 것은 모두 장생을 바라는 양생술(養生術)의 일종이다. 사람뿐 아니라 짐승들도 나름의 양생술을 행한다. 닭이 거름밭에서 퍼덕이고, 말이 모래에 몸을 비비는 것도 다 그러한 목적이 있어서이다. 소동파는 중국 당나라의 문인으로 당시에는 이러한 황로지술이 크게 유행하였다. 이와 같은 도가의 수련 방법은 신선술, 혹은 연단술(鍊丹術)이라는 이름으로 조선 후기까지 민간에서 행해졌으며 오늘날에도 그 명맥이 끊이지 않고 있다. 생사를 초월해야 한다는 사상이 마침내는 불로장생을 추구하는 방술이 된 것은 한편으로는 모순적으로 보이지만, 사람들의 불로장생에 대한 열망이 그만큼 크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불교와 샤마니즘

1. 불교의 죽음관

불교는 오랜 역사를 통해 대승과 소승의 수많은 종파와 수많은 가르침들이 있어 그 생사관을 한마디로 서술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불교는 인간의 삶을 고통의 바다(苦海)로 바라본다.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生老病死) 삶을 모두 고통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고통에서 해방되어 영원히 무궁하고 평화로운 경지(涅槃)에 들어가는 것이 불교의 목적이다. 이 삶은 이승의 삶 한 번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소위 윤회전생(輪回轉生)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많은 불교도들은 사람이 물리적으로 죽는다 해도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육도삼계(六道三界)를 해탈 열반에 이르기까지 영원히 윤회한다고 믿는다. 이렇듯 삶이 끝나지 않고 계속하여 윤회를 거듭하는 것은 이생에서 지은 업(業)과 인연(因緣) 때문이다. 이 업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바로 해탈이며 사람과 뭇 생명(衆生)이 이 경지에 도달하면 깨달은 자인 부처가 된다. 부처가 되면 더 이상 삶과 죽음은 의미가 없어지고 삶과 죽음에 기인하는 모든 고통이 사라진다. 업을 사라지게 하고 깨달음을 얻는 데는 여러 가지 수행방법이 있다. 고타마 싯다르타가 처음 제시한 것은 어느 한 쪽에 집착하지 말고 중도를 지키며 바른 견해, 바른 생각,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작업, 바른 노력, 바른 기억, 바른 명상의 팔정도(八正道)를 수행하는 것이다. 그러한 수행을 통하여 이 세상의 모든 존재하는 것들이 사실은 허망한 것(空)임을 깨닫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다. 모든 존재자는 서로 서로에게 의존하여 끊임없이 생성소멸을 하기 때문에 우리가 실체(entity)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은 그 안에 포함된 나 자신(自我)을 포함하여 모두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이 허상에 집착하기 때문에 참다운 나와 우주의 실상을 보지 못하고, 수많은 원인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다. 반야경은 이렇게 말한다. “보살은 이와 같이 집착하지 않는 것을 방편으로 하여 반야바라밀을 배운다. 어떤 것이 얻을 수 없는 것인가? 나와 남과 중생의 목숨이, 그리고 아는 사람과 보는 사람이 모두 실체가 없으므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다. 모든 존재자는 본래 공해서 얻을 수가 없고 항상 청정하다. 청정하다는 것은 모든 존재가 나지도 없어지지도 않으며, 더러운 것도 깨끗한 것도 아니며, 얻는 것도 짓는 것도 없음을 말한다. 이를 모르는 것을 무명(無明)이라 한다. 중생은 이 무명과 갈애(渴愛) 때문에 망상을 가지고 분별을 하여 유와 무의 양극단에 얽매인다. 사리풋타야,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수행할 때는 집착하지 않음을 방편으로 하여 밝은 지혜를 얻는다. 모든 존재자는 본성, 즉 자성(自性)이 없기 때문이다(5).”

그러나 이러한 존재의 본성을 꿰뚫어볼 능력이 없는 일반 중생들은 삶과 죽음의 괴로움에 시달린다. 삶을 기뻐하고 죽음을 슬퍼하는 것은 살면서 만드는 인연들과 그 무엇들이 있다고 생각해서 집착하는 망집과 애정을 갈구하는 갈애 때문이다. 그러나 생성된 모든 존재자는 필멸하기 마련임을 깨닫고 그러한 현상계를 넘어서서 생성도 필멸도 없는 청정무구의 참된 세상을 보라는 것이다.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가 된 고타마 싯다르타는 유복자가 죽어 슬퍼하는 한 부인에게 죽은 사람이 없는 집을 일곱 군데 찾아 쌀을 한 움큼씩 얻어오면 슬픔을 이길 방법을 알려 주겠다 했고, 그 부인은 그 말을 따랐으나 그런 집은 어디에도 없음을 알았으며 죽음은 필연임을 깨달아 슬픔에서 벗어났다고 한다(5).

죽음이란 사실은 허상(空)이라는 불교의 가르침은 인류가 깨달은 가장 심오한 가르침 중의 하나에 들어간다. 그러나 삼국시대에 한반도에 불교가 전래된 후 불교는 고려시대까지 국교로서 가장 중요한 종교였으며, 그 결과 민중들의 삶에 파고들어가면서 전래의 토속 신앙 및 샤마니즘과 결합하여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었다. 소수의 엘리트에게는 깨달음의 가르침이었지만, 다수 민중에게는 부처와 보살 숭배 및 기복의 대상이 되었으며, 통치자들에게는 지배의 수단이었다. 그런 가운데 세상에서 선을 행하면 극락에 가고, 악을 행하면 지옥에 가거나 짐승이나 아수라의 형태를 띠고 다시 태어나 고통을 겪는다는 통속화된 불교의 가르침은 애초의 불교 정신과는 무관하게 한국인들의 사후 세계에 대한 관점에 깊은 영향을 주게 되었다.

2. 샤머니즘과 한국인의 사후세계

유교(죽음은 필연적이니 삶을 잘 사는 데 더 집중하자), 노장(삶과 죽음은 저절로 그러한 것이며, 그 둘은 사실상 마찬가지다). 불교(삶도 허상이고 죽음도 허상이다)와 함께 샤머니즘은 고대로부터 한국인의 심성을 깊게 지배해왔다. 샤머니즘은 기본적으로 살아있는 사람들의 이승과, 영적 존재들이 사는 저승을 구분하고 이 두 세계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고 생각한다. 현세 이승에서 사는 사람들의 길흉화복이 저승의 영적 존재들에게 달려있기 때문에 이 둘을 매개(mediation)하여 영적 존재들을 달래고 화(禍)를 막고 복을 빌어야 한다. 이 임무를 맡은 사람들이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무당(shaman)이다. 사람은 죽어서 저승으로 가게 되는데 전쟁이나 재난 등으로 갑자기 죽거나 세상에서의 할 일을 다 끝내지 못한 채 죽으면 원귀가 되어 저승으로 온전히 건너가지 못하고 이 세상의 사람들을 괴롭힌다. 저승은 황천(黃泉), 구천(九天), 또는 염라국(閻羅國)이라고 하는데, 이 염라국은 염라대왕과 함께 불교의 전승에서 기인하였다. 사람의 수명이 다하면 저승에서는 저승사자를 보내어 영혼을 데리러 오는데 이 저승사자를 일컬어 최판관(崔判官)이라고 불렀다. 죽은 자는 판관을 따라 염라대왕 앞에 가서 세상에서 행한 선행과 악행에 따라 걸맞은 처벌을 받게 된다는 것이 민간의 저승 신앙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 학자인 김안로(金安老)가 쓴 『용천담적기(龍泉談寂記)』에는 샤머니즘의 입장에서 민간이 생각했던 저승의 모습이 다음과 같이 아주 상세하게 나와 있다.

박생(朴生)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염병에 걸려 10여 일을 위독하게 앓다가 숨을 거두었다. 그의 혼이 홀연히 어딘가로 가는데 마치 어떤 아전들이 쫓아와 잡으려 하는 듯 하여 도망을 가서 광막한 사막을 지나 한 곳에 이르니 궁전도 아니고 집도 아닌데, 말끔히 소제된 땅이 꽤나 널찍한데 단(壇)이 노천(露天)에 설치되어 있고 붉은 난간이 둘러져 있는 것이 마치 창(槍)이 꽂혀져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떤 관리들이 그 안에 줄지어 앉아 있고 머리는 소 같고 몸은 사람 같은 야차(夜叉)들이 뜰 아래 벌려 서 있었다. 그들이 박생이 오는 것을 보고는 뛰어 앞으로 나와 잡아서 마당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는 물이 끓는 가마 속에 던져 넣었다. 박생이 보니, 중과 여승, 남녀 할 것 없이 끓는 물속에 섞여 있었다. 박생은 가만히 생각하니, 그 사람들이 쌓여 있는 아래로 들어가게 되면 빠져 나오지 못하게 될 것 같아서 양손을 솥 표면에 대고 반듯이 누워서 떠 있었다. 한참 있다 야차가 쇠꼬챙이로 그를 꿰어서 땅에다 내 놓았다. 그런데도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 조금 있다 야차를 시켜 상급 관청으로 보내게 하였다. 큰 궁궐에 이르러 겹문을 들어가니 의자가 설치되어 있고 좌우에 탁자가 있는 것이 마치 지금의 관청과 같았다. 높은 면류관을 쓰고 수놓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그 위에 줄지어 앉아 있고 수레와 호위병들의 성대함은 마치 군왕(君王)과도 같았다. 서류 장부들은 구름처럼 쌓여 있고 판결의 도장이 벼락같이 찍혀지고 있었으며 파란 두건을 쓴 나졸들이 책상 아래 엎드려 있다가 문서들을 나른다. 이 엄숙하고 정숙한 장면이 인간 세상과는 아주 딴판이었다. 박생을 끌어와 묻기를, “너는 세상에서 어떤 일을 하였으며 또 어떤 직책을 맡아 보았냐.” 하니, 박생이, “세상에서 별다른 일은 하지 않았으며 직책은 의국(醫局)에 속해 있었으며 방서(方書)를 출납하는 일을 했습니다.” 하였다. 심문이 다 끝나니 관리가 관리들에게 두루 이것을 알렸다. 여러 관리들이 의논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은 운명이 다 끝나지 않았으니 올 사람이 아니다. 관리들이 저승 명부를 잘못 살피고서 이런 실책을 한 것이니, 이것을 어떻게 처리하지.” 하니, 그 중에 한 관리가 거동이 점잖은 품이 마치 우리 선대의 왕 같았는데, 그가 사사로이 박생을 끌고 자리 뒤쪽에 가서, “지금 너에게 떡을 줄 것인데 네가 만약 그 떡을 먹으면 다시는 세상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하였다. 박생이 엎드려 절하고 땀을 흠뻑 흘리고 물러났다. 과연 한 상자의 많은 떡을 가지고 와서는 박생에게 먹으라고 하였다. 박생이 거짓으로 먹는 체하고 몰래 품속으로 모두 집어 넣었다…(중략)…박생이 하직인사를 하고 서함(書函)을 받들고 나왔다. 처음 도착했을 때 사람을 물 끓는 가마솥에 던져 넣던 곳까지 나오니 처음 체포하던 옥졸이 박생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박생이 그 옥졸에게 따지기를, “관에서 이미 나를 놓아 주었는데 네가 감히 마음대로 구속하여 방자하게 못된 짓을 거리낌 없이 하는가.” 하였더니, 그 옥졸이 독살스럽게 말하기를, “나는 문을 지키는 사람이다. 관의 증명이 없으면 나가지 못한다.” 하였다. 박생이 서함을 보이며, “이것이 관의 증명이 아닌가.” 하니, 옥졸이, “그것은 문을 나가는 것과 관계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관에 가서 물어 보겠다.” 하고 가더니, 한참 있다가 돌아와서 말하기를, “이미 관의 승인이 있으니 너는 가도 좋다.” 하고는 하얀 삽살개 한 마리를 주면서 털이 많은 그 개를 따라 경계를 나가라고 하였다. 큰 강이 있는 곳에 이르자 삽살개는 날아가는 것 같이 뛰어 건너므로 박생도 몸을 날려 뛰어드니 강 복판에 빠지고 말았다. 그런데 무엇이 받아주는 데 마치 수레에 앉은 것처럼 편안하였다. 그리고 단지 바람 소리 물소리만 들리고 어디로 가는지 몰랐다. 그러다가 갑자기 눈을 떠 보니 자기 몸은 자리 위에 누워 있으며 아내와 자식들이 옆에서 울고 있고 친척들이 모여서 막 자기를 염(殮)하려고 모든 것을 갖추어 놓고 있었다(『龍泉談寂記』 有朴生者∘ 嘗染癘熱∘ 危革十餘日而氣盡∘ 魂蘧蘧有所適∘ 如有吏卒追押∘ 奔騰而去∘ 歷曠漠至一處∘ 不宮不室∘ 除地甚平敞∘ 循壇露設∘ 未櫺周匝∘ 如今槍累然∘ 有官人列坐其內∘ 牛頭人身夜叉之屬∘ 森立庭下∘ 見生至踴躍而前∘ 拿致于庭∘ 旋付湯鬵∘ 生見僧尼男女雜錯湯沸中∘ 竊念若入積人下∘ 懼不得出∘ 卽以兩手∘ 分據鬵面∘ 仰臥浮游∘ 良久夜叉以鈇串貫出置之地∘ 猶不覺痛苦∘ 俄令夜叉傳付上司∘ 行至大宮闕∘ 入重門∘ 設倚子左右几卓∘ 如今官府∘ 峨冕繡裳者∘ 列踞其上∘ 輿衛之盛如君王∘ 簿牒雲堆∘ 署判雷下∘ 靑頭胥吏羅伏案下行文書∘ 淸嚴峻肅∘ 迥非人世∘ 引生問曰∘ 爾在世有何行事∘ 且爲何等任職∘ 生對曰∘ 在世別無異行∘ 職隷醫局∘ 掌出納方書∘ 供畢∘ 吏白諸官人遍∘ 諸官人議曰∘ 此人運不窮不當來∘ 吏按冥籍失審覈∘ 以貽此謬∘ 何以處之∘ 其中一官人容儀郁穆∘ 似若我先代王∘ 私引生至座後謂曰∘ 今當賜爾餠餌∘ 爾若食下∘ 則更不返世矣∘ 生拜伏喘汗而退∘ 果以一榼盛餠餌∘ 逼令生喫∘ 生佯食潛納懷中盡… 生拜辭擎書函而出∘ 到初至湯鬵之所∘ 則初押之卒∘ 拘執不使放過∘ 生詰卒曰∘ 官旣遣我∘ 爾敢擅拘恣獰無憚乎∘ 卒厲氣答曰∘ 吾門者也∘ 非官驗不可出∘ 生視書函曰∘ 此非官驗乎∘ 卒曰非關出門∘ 吾將質于官∘ 去良久而返曰∘ 已得官旨∘ 汝可去∘ 付一白∘ 犬毛多 使導之出境∘ 至一大江∘ 乃跳越如飛∘ 生亦騰身躍入∘ 旋墜江心∘ 有物承之∘ 安如輿坐∘ 但聞風水聲∘ 不知所之∘ 忽覺開睫∘ 則身臥床席∘ 妻孥傍泣∘ 召集親黨∘ 方爲斂襲之具矣).

이와 같은 저승 설화는 우리나라 외에도 많은 민족의 전승에서 유사한 것들이 발견된다. 저승의 존재를 믿는 것은 이승의 자신의 존재가 영구히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유래되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의식과 존재가 영구히 소멸한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가장 높은 수준의 정신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고대로부터 이러한 믿음이 끈질기게 살아남았을 것이다. 그리고 내세의 존재는 현세에서의 부정의와 부도덕을 어느 정도는 정당화해준다. 즉 현세에서 부당하게 많은 것을 누린 자들과 사악한 자들이 내세에서라도 처벌받지 않는다면 세상의 선과 정의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라는 실존적 의문에 대한 소박한 응답이다. 이러한 믿음은 유교, 불교, 도교의 사상과 혼재되어 오늘날에도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표현되고 있다.

결 론

인간의 수명은 하늘이 정해준 것이고(天命), 죽음은 불가피한 것이다. 이때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원 없이 맞이하는 죽음이 좋은 죽음(善終)이므로 죽음은 가급적 피하고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살았으면 하는 것이 보통 한국인이 죽음을 바라보는 태도일 것이다. 덧붙여 한국인은 ‘고정된 실체로서의 자아(ego as a solid entity)’라기보다는 관계로서의 자아 개념에 더 익숙하기 때문에 해야 할 일-주로 가족과 사회에 대한 의무와 관련이 있다-을 다 하고 죽는 것은 그리 타기할 만한 것은 아니다. 개인의 생명은 전체와의 관계를 통해 영속한다는 믿음이 암암리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노인의 죽음을 호상(好喪)이라 하여 공동체가 애도 보다는 오히려 축제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덧붙여 생사를 초월한 엘리트들의 죽음-공적 정의를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린 선비와 열사들, 죽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초연히 받아들인 고승과 대덕들, 자연에 은거하여 명리를 잊고 살다가 고요히 자연으로 돌아간 군자들의 모습은 이상적인 죽음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귀감이 되고 있다. 죽음을 둘러싼 이렇게 풍요한 내러티브와 삶과 죽음에 관한 고상한 사유들은 개인에게 스스로를 죽일 권리가 있는가 없는가 하는 근대적 논의를 때로는 사소한 것으로 만들기도 한다. 사회적으로 분분한 여러 죽음에 관한 논의들 속에서 우리는 조상 전래의 죽음에 대한 사유와 내러티브들을 발굴하고, 현대 한국인에게 미치는 그 흔적들을 따라갈 필요가 있다. 그것이 오히려 이 핵심적인 문제에 대해 보다 큰 시사점을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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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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